37년 만에 ‘무가베 없는’ 짐바브웨

입력 2017-11-23 05:05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이 하야를 발표한 21일(현지시간) 수도 하라레에서 시민들이 장갑차 위에 걸터앉아 미소 짓는 군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AP뉴시스
사진=AP뉴시스
축하의 자동차 경적 소리가 수도 하라레의 거리마다 가득했다. 장갑차 위에 걸터앉은 군인들은 환호하는 군중과 악수를 나눴다. 사람들은 차 지붕 위에 올라 손에 쥔 짐바브웨 국기를 흔들었다. 국기를 두 손 높이 펼쳐 올린 채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이도 있었다. 30년 전 총리였던 로버트 무가베(93) 대통령이 허울뿐이던 케이난 바나나 초대 대통령을 끌어내리던 날 내걸린 것과 같은 깃발이었다.

총리 시절을 포함 37년간 독재해 온 무가베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하야를 선언했다. 지난 14일 군부 쿠데타를 맞은 지 1주일 만이다. 현지 매체 짐바브웨메일에 따르면 이날 오후 제이콥 무덴다 국회의장은 무가베가 공식 절차에 따라 사임 서한을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집권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을 비롯한 정치권은 탄핵 논의를 중단했다.

무가베가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다음 대통령은 무가베가 축출했던 에머슨 음난가그와(71·사진) 전 부통령으로 정해진 모양새다. 러브모어 마투케 ZANU-PF 원내총무는 현 당대표인 므난가그와가 24일 대통령에 취임, 다음 대선이 열리는 내년 9월까지 임기를 수행한다고 발표했다. ZANU-PF는 이미 대선에서 내세울 대통령 후보로 므난가그와를 확정한 상태다.

영국 식민지 시절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던 백인정권 ‘로지디아’ 정부를 상대로 무장 해방투쟁에 앞장섰던 무가베는 1980년 정부와의 협상으로 이뤄진 총선에서 ZANU-PF를 이끌고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 짐바브웨 건국을 주도하고 첫 총리직에 올랐다. 7년 뒤에는 내각제를 폐지함과 동시에 ‘바지 사장’이던 바나나 대통령에게서 대통령 자리를 빼앗고 철권통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30년 뒤 무장투쟁 동지이자 오른팔이던 므난가그와를 축출하려다 되레 자신이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

무가베가 하야한 뒤에도 곧바로 독재가 종식될 것이라고 보는 이는 적다. 새로 정권을 잡을 므난가그와와 ZANU-PF가 제대로 된 개혁을 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서다. 포린폴리시는 “ZANU-PF는 독재와 관권 선거가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기계나 다름없다”면서 “므난가그와 역시 억압과 통제의 체제를 만든 자들 중 한 명”이라고 비판했다.

야권에서도 지금으로선 무자비하고 잔혹한 면모로 ‘악어’라는 별명을 얻은 므난가그와에게 맞설 인물이 마땅치 않다. 포린폴리시는 므난가그와가 허울뿐인 직책에 야권 지도자를 앉힐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나눠줄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봤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