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희 국세청장이 정치적 세무조사와 관련 고개를 숙였다. 한 청장은 22일 열린 국세행정개혁위원회에서 “세무조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이 확인된 것에 대해 국세청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관 합동의 국세행정개혁태스크포스(TF)가 지난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발단이 된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 5건의 조사권 남용 사례를 발표한데 대한 입장 표명이다.
2008년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착수 직후부터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을 것이란 의혹이 많았다. 조사 과정과 방법, 강도 등이 통상의 조사와는 너무 다른 상황이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의 자리보전을 위한 기획조사라는 설이 파다했다. 국세청은 조사가 마무리되기 전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났다.
국세행정TF를 통해 뒤늦게나마 이 세무조사의 부당성이 밝혀진 것은 다행이다. 현직 국세청장이 조직의 과오를 사과한 것은 바람직하다. 한 청장은 “중대한 위반행위가 확인된 사안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적법 조치하라는 TF 권고사항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혀 검찰에 수사 의뢰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아울러 태광실업 조사 과정에 한 청장이 역할을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실관계가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 당시 본청 조사국 핵심 과장이었던 그가 무관할 수 없다는 의구심이 있다.
정치적 목적을 지닌 세무조사는 과거 여러 정권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됐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부의 정치성 세무조사가 자주 문제가 됐다. 그럼에도 근절되지 않는 것은 세무조사를 제대로 규율하는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관련 법률과 규정 등이 있지만 조사대상 선정, 조사기간 및 방법, 검찰 고발여부 등 전권은 국세청에 있다. 세무조사에 관한 한 통제수단이 사실상 전무하다. 청와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불순한 목적의 세무조사가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늘 국세청 개혁방안이 거론되고 특히 세무조사 개선 논의가 언급되지만 유야무야됐다. 이번에야말로 부당한 세무조사를 시스템으로 제어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지난 15일 한국조세연구포럼과 민주연구원이 국회에서 개최한 조세개혁 토론회에서는 여러 해법이 제시됐다. 그중에서도 국세행정 전반을 관할하는 국세청 감독위원회 신설은 설득력 있는 대안이다. 이는 과거 정부 출범 직후에도 얘기가 있었으나 국세청의 반발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경우 재무부 산하에 국세청 감독위원회가 있듯이 우리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세무조사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책은 제도를 통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사설] 정치적 세무조사, 제도 통해 원천적으로 막아야
입력 2017-11-22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