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화된 ‘박근혜 국정원’… 이헌수 생존은 왜?

입력 2017-11-22 05:00

청와대에 특활비 전달 주도
다른 간부와 달리 처분 미뤄

檢, 매주 3∼4차례 李 조사
국정원 수사 판 짜는 셈
일각선 ‘플리바기닝’ 관측

박근혜정부 시절의 국가정보원 지휘부는 정치공작 수사에 이은 특수활동비 상납 수사로 사실상 초토화됐다. 국정원장 2명이 구속됐고, 나머지 1명도 기소가 확실시 된다. 다른 핵심 간부 상당수도 이미 구치소 동기가 돼 있다. 그런데 유독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 대한 법적 처분은 내려지지 않고 있다.

이 전 실장은 지난 정부 4년 내내 국정원 인사·예산을 총괄하는 기조실장으로 있으면서 국정원장 밑의 1·2·3차장보다 막강한 실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한 검찰 출신의 변호사는 “기조실장은 단순한 실무자가 아니다. 당시 국정원이 저지른 대부분 범죄의 공범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도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수사에서 지난달 11일 국정원 간부 출신 중 이 전 실장의 자택을 맨 처음 압수수색했다. 같은 달 24일 이 전 실장을 불러 피의자 조사도 벌였다.

그는 이후 1주일에 3∼4차례씩 비공개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의자인 동시에 국정원 돈 관련 수사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정부 국정원장 3명의 특활비 상납 건이나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 1억원 수수 혐의 수사도 국정원 자금의 문지기였던 이 전 실장의 진술과 제출 자료가 토대가 됐다. 전직 원장들 측은 검찰이 주범격인 이 전 실장 조사 내용을 갖고 전체 수사의 판을 짜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원장 결재를 거쳐 특활비가 상납된 사실은 인정하지만,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국정원 간 연결 창구이자 돈 배달꾼 노릇도 한 이 전 실장은 놔두고 윗선만 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 한 전직 원장의 변호인은 지난 16일 영장실질심사 법정에서 검사들에게 “제일 나쁜 사람이 누구냐. 거기부터 구속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따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이 전 실장은 검찰의 관리 내지 보호 아래 집이 아닌 제3의 장소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실장 아파트 주민과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21일 “모습을 본 지 오래됐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 전 실장을 상대로 일종의 플리바기닝(피의자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타인에 대해 진술하는 대가로 형량을 조정해 주는 제도)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검찰은 청와대가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진행한 이른바 ‘진박 감별’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국정원 돈으로 정산하는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이날 현기환(수감 중)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불러 조사했다.

황인호 신훈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