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심각한데 소외받는 포항 외곽지역
마을 주민 대부분 노인들이라
복구는 엄두조차 못내는 실정
겨우 피해 조사만 진행된 상태
비상시 의지하고 지낼 수 있는
대피소라도 마련하는 게 급해
“찾아와서 물으면 뭐하노? 사진도 찍고 하더니만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경북 포항시 흥해읍 매산리에서 21일 만난 할아버지는 지진피해 상황을 묻자 손사래를 쳤다. 지진으로 포항시 외곽 마을의 피해도 심각한데 인구가 밀집된 도심에 비해 제대로 된 관심과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으로 읽혔다.
매산리 일대 농촌마을은 겉보기엔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폭탄 맞은 듯 완전히 무너진 담벼락과 벽면 곳곳에 깊고 굵은 균열이 발생한 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창문이 모두 깨져버린 집도 있었고, 기둥이 틀어지고 벽면이 무너져 철거가 불가피한 집도 여러 채 눈에 띄었다. 이 마을에는 30년 이상 된 오래된 집들이 많아 추가 붕괴 위험이 더욱 큰 상황이다.
하지만 복구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복구장비와 인력이 도심에 집중된 데다 200여 가구의 주민 대다수가 60대 중반에서 80대 후반의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피해 조사만 진행된 상태로 우선순위에 밀려 신속한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마을 노인들은 여진이 올 때마다 집이 무너질까 불안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데다 차량도 없어 대피소로 지정된 흥해읍사무소까지 가기가 어렵다고 했다. 마을회관도 붕괴 위험이 있어 이미 폐쇄됐다. 마을의 노인들이 의지하면서 지낼 대피소 마련이 시급해 보였다.
마을회관에서 500m가량 떨어진 김일남(84) 할아버지 집은 폐허를 방불케 했다. 3m 높이의 벽체는 가로 세로로 금이 가고 한쪽으로 밀려 곧 붕괴될 듯 아슬아슬했다. 큰방의 창문은 비틀어져 아예 열리지 않았고, 거실 쪽에 달린 방과 부엌 벽은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집 어느 곳에도 사람이 기거할 만한 공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 할아버지는 “응급복구라도 해야 되는데 언제 될지 모르겠다”면서 “그냥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부상을 입은 김영택(64)씨는 “지진 발생 당시 놀라서 집밖으로 뛰쳐나오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어디에 피해신고를 해야 될지 몰라서 그냥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집 옥상 난간 벽은 무너져 앞집 지붕을 덮쳤다. 그는 “지진 당시에 앞집에 사람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라며 “사람이 있었으면 크게 다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을에서 만난 김용주(77) 할아버지는 “읍사무소에서 한 번 오기는 했는데 그다음에는 연락이 없다”면서 “피해 대책이 아파트 등에 집중되고 노인들이 주로 사는 농촌의 피해는 돌보지 않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6년 전부터 이 마을에서 개척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매산교회 한정치(42) 목사는 “마을의 피해가 크다”면서 “정부가 빨리 인력과 장비를 지원해 주민들이 안정을 찾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항=글·사진 조원일 기자
wcho@kmib.co.kr
“피해 대책 도심에 집중… 농촌은 관심도 지원도 뒷전”
입력 2017-11-2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