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기로… 제모·비만·스파에 눈 돌리는 산부인과

입력 2017-11-22 05:01

산과 비중 과거 비해 반토막
학과 차원 활로 모색 움직임

“저출산 해결이 해법” 진단도


출산율 저하로 산부인과 병의원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불법 광고까지 하면서 필러 시술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활로를 찾기 위한 이들 병의원의 노력은 눈물겹다. 소아청소년과, 내과(당뇨), 피부과 등 타과와 협진을 하거나 의료행위 외의 건강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임산부 마사지 서비스, 소아성장 클리닉, 전신체형 밸런스를 관리하는 스파 서비스, 만성피로를 회복하는 영양 클리닉 등을 산부인과에서 이용할 수 있다. 비만클리닉, 제모에 뛰어든 병원도 있다.

이기철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수석부회장은 21일 “산부인과는 ‘산과’ 진료가 40%를 차지하는데 산과 비중이 과거에 비해 반토막 수준”이라며 “산부인과 병의원이 운영을 위해 하루에 받아야 할 환자는 평균 27명이지만 이를 맞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과 차원에서 미래 활로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다. 비뇨부인과 도입도 대안으로 떠오르는 분야다. 호르몬 이상으로 소변이 자주 마려운 증상 등을 치료하는 비뇨부인과는 그동안 여성 환자들이 진료받기 꺼려했다. 비뇨기과 전문의가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비뇨부인과처럼 노인의학과 관련된 여성 질환을 여성 의사가 많은 산부인과에 특화시키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성기능 장애, 성적불만족 해소 등에 관한 성의학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현재까지 성기능 향상에 관한 치료는 약물·건강식품, 운동 등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의사들이 연구해서 체계적으로 확장하겠다는 취지지만 아직 성의학은 사회 통념상 시장성이 약하다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산부인과의 위기는 곧 국가의 분만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 분만에 대한 정부 지원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근영 강남성심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지난 20년간 타과는 의료 수가가 꾸준히 올랐는데 분만 수가는 제자리걸음을 했고, 다른 수가보다 지나치게 낮다”며 “미래세대를 재생산하고 출산하는 일에 지나치게 인색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통령 직속 기구로 편성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산부인과 교수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저출산 때문에 분만 수는 줄고 결혼연령이 높아져 사망 위험에 이르는 고위험산모가 증가하는 상황”이라며 “산부인과도 문제지만 더 멀리 보면 미래 세대가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김용범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산부인과 폐업률이 높아지면 그만큼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이라며 “결국 본질적인 해결책은 국가·사회적 차원에서 저출산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예슬 이형민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