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대부분의 나라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있으면서도 종교인에 대한 과세도 시행하고 있다. 이 경우 자칫하면 과세 과정에서 반드시 따라오는 세무조사라는 수단이 정교(政敎)분리 원칙을 허물게 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하여 나라마다 형태나 절차,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치와 종교가 직접 부딪치는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한 안전(견제) 장치를 두고 있다. 이는 정(政)이 교(敎)의 권역으로 넘어오는 통로가 세무조사임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음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敎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권역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세무조사를 막거나 최소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종교인 과세 시행과 더불어 그 안전장치의 하나로 종교단체에 대해서는 가급적 세무간섭을 적게 하도록 하는 제한적 세무조사 규정을 명문으로 두고 있다. 이 규정을 두고 政은 안전판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무공무원이 실지조사 전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서면으로 소명요구를 할 것이고 그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세무조사 절차라고 한다. 따라서 政과 敎가 직접 부딪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敎가 세무조사를 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즉, 서면으로 하는 소명이 政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에는 세무공무원에 의한 실지조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政과 敎가 맞부딪치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현행 법령상 제한적 세무조사 규정이 정교분리의 원칙을 지키는 보루가 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현행 법령의 규정은 “다만, 종교인소득에 대해서는 종교단체의 장부 서류 그 밖의 물건 중에서 종교인소득에 관련된 부분에 한하여 조사하거나 그 제출을 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여기서 관련성에 대한 기준은 별도의 법령이 없으므로 과세 당국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종교단체의 장부 서류가 종교인소득에 관련된 것이라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세무조사가 가능한 것이고, 관련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하면 세무조사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결과는 세무조사의 제한규정이 없는 다른 세무조사에서도 조사목적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조사를 할 수 없는 것과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 제한적 세무조사(서면조사든 실지조사든 의미에는 차이가 없다) 규정이 敎의 입장에서는 정교분리를 지킬 수 없다고 믿는 까닭이다.
문언상으로만 보면 종교단체의 장부 서류가 종교인소득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결국 종교단체 세무조사 여부는 오로지 政의 판단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종교인과세가 시행되는 경우 조사권이 없는 과세권이라는 것은 법리상 있을 수 없다.
해결책을 찾아보자. 政과 敎 사이에 완충지대(협의체)를 설정하는 것이 그 대안일 수 있다. 政이 敎에 요구하는 모든 사안 및 敎가 政에 바라는 여러 안건을 이 완충지대에서 처리되도록 하면 각자가 상대의 권역을 직접 침범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이 완충지대가 정치와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삼한(三韓)시대에 소도(蘇塗)라는 제정(祭政)분리 제도가 있었다. 이를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정교분리와 상통하는 일맥이 있어 보인다. 절대권력자 입장에서 소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같은 의미로 정교분리 원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政의 더 많은 인내가 요구되지 않을까. 삼한의 절대권력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정재곤 한국교회법학회 사무처장
[기고] 정치·종교 공존하려면 완충지대 필요하다
입력 2017-11-22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