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처음 오른 것은 1988년 1월이다. 북한은 1970년 일본항공 여객기를 납치한 일본 적군파 테러리스트를 비호하고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겨냥해 아웅산 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등 국제 테러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결정적 계기는 1987년 11월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이다. 북한은 사건 직후부터 지금까지 자신들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공작원 김현희씨가 생포되면서 진실이 드러났다.
테러지원국 해제를 줄곧 요구하던 북한은 이를 20년 만에 이뤄냈다. 2007년 6자회담에서 2·13 합의가 체결된 후 미국이 북한의 핵 동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테러지원국 해제를 ‘당근’으로 제시했다. 북한이 2008년 6월 CNN이 중계하는 가운데 영변 5㎹급 원자로를 폭파하자 미국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미국이 북한의 ‘쇼’에 넘어갔다는 우려가 많았다. 이런 우려는 2009년 5월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현실화됐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등 거듭되는 북한의 도발로 테러지원국 재지정 요구가 빗발쳤으나 미 국무부는 ‘북한이 국제 테러활동을 지원한 증거가 없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2014년 북한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가 ‘최고존엄 모독’이라며 제작사 소니픽처스에 해킹 공격을 감행했을 때도 이런 기류는 변하지 않았다.
상황이 바뀐 것은 북한이 지난 2월 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신경독 VX로 살해하면서다. 북한에 18개월간 억류됐던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혼수상태로 송환된 직후 숨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웜비어 사망 이후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김정남 암살·웜비어 사망… 테러지원국 재지정 불댕겨
입력 2017-11-21 17:53 수정 2017-11-21 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