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일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행동요령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수능 시험 중 진동을 느끼면 어떻게 행동할지, 수험생들이 대피할 때 누가 책임을 지고 인솔하는지, 시험 중단을 최종 결정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등을 담은 일종의 지진 대비 수능 매뉴얼이다. 그동안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안일한 생각에 ‘국민행동요령’ 같은 매우 초보적이고 상식적인 매뉴얼만 있었던 것에 비하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능을 3일 남기고 범정부 차원에서 발표한 종합대책인데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수능 당일에 지진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만든 반쪽짜리 매뉴얼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나올 정도다. 무엇보다 잠시라도 시험이 중단됐을 때 부정행위 가능성을 어떻게 차단할지, 일부 시험장에서만 시험이 무효가 되면 이후 어떻게 처리할지가 명확하지 않다. 가장 민감한 문제인 수능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심각한 지진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할지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큰 문제다. 정부는 일부 지역에서 시험을 볼 수 없게 될 경우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했다고 해명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조차 밝히지 못하는 것은 일이 터진 다음에 눈치를 보며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는 수능이 무사히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매뉴얼을 점검하고 보완해야 한다.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희망과 현장에서 잘 판단할 것이라는 신뢰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경우 뒤따르는 국가적 혼란과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번 기회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재난 대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수능은 전 국민이 당사자다. 정부는 신속하게 누구나 공감할 원칙을 세우고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9·12 경주 대지진 이후 근본적인 지진 대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는 여전히 일시적인 땜질 처방에 머물고 있다. 나라 안팎에서 지진이 있을 때마다 오래된 학교와 낡은 단독주택 문제가 지적됐지만 지금까지 바뀐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지진에 매우 취약한 필로티 구조의 다세대주택이 크게 늘었을 뿐이다. 지층 액상화 현상이 곳곳에서 관측됐지만 정부가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문재인정부는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를 100대 국정과제로 내세운 만큼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번만큼은 책임감을 갖고 끈질기게 시스템을 구축해 국민적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
[사설] 반쪽짜리 매뉴얼로 수능 무사히 치를 수 있겠나
입력 2017-11-20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