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8장 26∼39절
예수님은 본문에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의 광풍을 뚫고 ‘거라사인의 땅’에 가셔서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십니다. 왜 위험을 무릅쓰고 호수를 건너면서까지 그를 만나러 가셨을까요.
귀신 들린 자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외칩니다. 자신에게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필요할 때 요청할 테니 제 일에 일거수일투족 간섭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 우리에게 와서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은 자유를 얻었지만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빠져나간 군대 귀신이 돼지 떼로 옮겨가 호수에 뛰어듭니다. 사람들은 이 귀신 들렸던 사람이 이제 정신을 차리고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두려워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한 사람에 머물지 않고 거라사 지역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낸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자기 삶에서 ‘통제되지 않는 실체’가 무엇인지 직면하게 됩니다.
두려움에 빠진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기 위해 갈릴리 바다를 건너 광풍을 뚫고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본문이 끝난다면 예수님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에 대한 사랑을 위해 어디든 달려가는 분으로 이해되는 걸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하지만 곧 반전이 이어집니다.
귀신에게서 자유하게 된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이 요청을 거절합니다. 대신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그에게 행하신 일을 전부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귀신 들려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에게는 고향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감당하며 사는 것보다 차라리 예수님을 따라가는 일이 더 나아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그저 기억하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거절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 가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증거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예수님과 상관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증거해야 합니다. 때로 만족스럽지 못한 과거를 바라보며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머뭇거리는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떠나가라고 한 사람들은 돼지 떼가 죽는 경제적 타격을 귀신 들림보다 더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귀하게 붙들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몸으로 예수님의 행하심을 체험한 증인의 한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귀신 들렸던 사람처럼 예수님이 자신에게 행한 일을 온 성내에 전파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외로워도 자신이 붙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전영준 인천 더작은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입력 2017-11-21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