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나의 일’이라고 생각
포항 이재민 돕기 자발적 봉사
1000·5000원… 소액기부도
수험생들 ‘공정한 경쟁’ 중시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에 잠시라도 불평했던 제가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작은 도움이라도 보탭니다.”
자신을 고3 수험생이라고 소개한 정혜인 학생은 국내 한 온라인 기부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5000원을 기부했다. 윤애랑 학생도 “고3 현역인데, (수능 연기로) 뭔가 허무하고 맥이 빠지기도 했지만 포항 수험생 친구들이 조금 더 힘냈으면 좋겠다”며 “같이 열심히 달려왔을 텐데, 마지막이 아쉬움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응원 메시지와 함께 1000원을 기부했다.
지진 이후 여진 공포와 추위, 수능 공부라는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는 포항 수험생들을 향한 동료 수험생들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19일 해당 기부 사이트에는 “수험생이라 소액 기부밖에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마음 추스르고 좋은 결과 얻길 기도한다” “얼마나 무섭고 떨리실지 다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다” 등 비슷한 응원 글이 넘쳐났다. “포항 때문에 수능이 연기됐다”는 일부 철없는 댓글과 달리 이들의 글에선 국가적 재난을 내 일처럼 여기는 성숙한 공동체 의식이 묻어났다.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공고에서는 이날 포항 영일고 학생 8명이 직접 봉사활동에 나섰다. 손성혜(17)양은 “이재민들이 체육관에 계시다고 해서 어떻게든 돕고 싶은 마음에 다들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포항에 사는 재수생 이길은(18)양은 “수능이 미뤄져 불안한 건 모든 지역이 똑같을 것”이라며 “다들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 도움을 주려 한다니 위로가 된다”며 고마워했다.
전북 전주의 수험생 임모(18)군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수능이 미뤄진다고 발표된 처음에는 짜증이 많이 났다”면서도 “수능이 미뤄지면서 피해를 본 건 사실이지만 포항 아이들이 불안한 상황에서 시험을 보게 된다면 그건 공평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세종과학고에서 만난 안모(18)군 역시 “수능 연기로 며칠 더 긴장해야 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포항 친구들과 또래 친구들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시험을 보는 것보다 낫다”며 ‘경쟁자’들을 먼저 생각했다.
현재 고3은 중3 때 또래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다. 세월호의 아픔을 통해 국가재난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강한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겪었던 10대들이 국가적 재난에 감정 이입을 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10대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지만 공정하지 않은 경쟁에 대한 반감도 높다”며 “공정성을 중시하는 성향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글=이형민 허경구 기자 gilels@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
‘재난 아픔’ 나누는 세월호 세대… ‘포항 수험생’ 응원하는 수험생들
입력 2017-11-20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