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길게 울렸다. 결승골을 지킬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던 관중은 참았던 함성을 내지르며 필드로 뛰어들었다. 대부분이 검은빛 곱슬머리와 눈동자를 한 쿠르드족 사람들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를 안은 관중과 선수들은 뒤엉킨 채 기쁨을 나눴다. 쿠르드족 깃발이 환호하는 이들의 손마다 들려 있었다. 이날만큼은 그토록 그리던 독립이 이뤄진 듯했다.
나라 없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난민 신세로 살아가는 쿠르드족이 축구에서는 ‘해방’을 맛봤다. 그렇게 해준 주인공은 지난달 스웨덴 프로축구 1부리그 승격을 확정지은 쿠르드족 축구팀 ‘달쿠르드FF’다. 이라크의 쿠르드계 매체 루다우는 먼 유럽에서 있었던 이들의 승격 이야기를 지난 16일(현지시간) 뒤늦게나마 동포들에게 전했다.
스웨덴 2부리그 ‘수페레탄’ 소속인 달쿠르드FF는 지난달 28일 오후 GAIS와의 경기에서 1대 0으로 승리, 리그 2위 자격으로 1부리그 ‘알스베스칸’ 승격을 최종 확정지었다. 창단 이래 13년 만에 이룬 쾌거다. 9부리그에서 시작한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밑바닥에서부터 이뤄낸 성공이다.
달쿠르드FF는 2004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약 300㎞ 떨어진 달라르나 지방에서 창단됐다. 쿠르드족 난민 청소년을 돕기 위한 사회운동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민자로서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쉬운 쿠르드족 아이들에게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날 경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킨 미드필더 라웨즈 라완(30) 역시 스웨덴에서 태어난 쿠르드족 출신 미드필더다. 라완은 스웨덴 TT통신에 “쿠르드족 수천만명이 춤추며 기뻐하고 있다. 이런 기쁨을 줄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소감을 전했다. 주장 페시라우 아지지(29)도 쿠르드족 민병대 전사의 아들이다.
전 세계에 나라 없이 흩어진 쿠르드족에겐 이 팀이 국가대표팀이나 다름없다. 세계 최강 FC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 민족을 대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팀 엠블럼에도 쿠르드족 깃발이 들어가 있다. 국가가 있는 대표팀만 출전을 허락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월드컵에는 지원하지 못하지만 비FIFA 산하 대회인 VIVA월드컵 등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작은 팀이지만 인기는 넘쳐난다. 이들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구독자가 150만명이 넘는다. 전 세계 쿠르드족 인구가 2500만∼3000만명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관심이다. 스웨덴에서 활동 중인 이라크 출신 쿠르드족 작가 아그리 이스마일은 “쿠르드 아이들에게 (달쿠르드FF는) 그저 응원하는 축구팀뿐만이 아니라 자극을 주는 성공담”이라고 CNN방송에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스웨덴 속 쿠르드 난민, 축구로 희망을 쏘다
입력 2017-11-19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