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외교부 ‘특활비’ 엉뚱한 곳에 샌다… ‘부적절 사용’ 다수 발견

입력 2017-11-19 18:43

‘백제 금동대향로’ 모조품
구매해 대사 관저에 전시
우리 기업의 현지법인
경영진 초청에 지불하기도

외교관 비공개 활동 지원 예산
올해 87억… 내년 78억 편성
용도에 맞게 지출했는지 여부
감독에 제약 많아… 대책 절실

중동 지역의 A대사는 지난해 12월 외교부 예산으로 ‘백제 금동대향로’ 모조품을 구매해 자신의 관저에 전시했다. 국보 287호인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시대 금속공예품의 진수로 평가된다. 당초 한국 문화를 알린다며 ‘매력한국 알리기 사업’ 예산으로 구매하려 했지만 예산이 부족하자 ‘외교네트워크 구축비’를 썼다. 구매비와 운송비를 합쳐 2836달러가 들었다.

외교부는 최근 A대사에게 장관 명의로 엄중경고 조치를 내렸다. A대사는 “언젠가 적절한 계기가 되면 주재국 기관에 선물할 계획이었다”고 해명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이 외교부의 2016년 1월부터 지난 7월 외교네트워크 구축비 집행내역을 제출받아 19일 확인한 결과 이를 부적절하게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항목이 다수 발견됐다.

외교네트워크 구축비는 외교관의 비공개 활동을 위한 예산이다. 외교 목적이면서 대외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해 사용할 수 있어 외교부의 ‘특수활동비’로도 불린다.

주로 주재국 주요 인사와의 식사비용이나 선물비용으로 쓰인다. 예전에는 국가정보원과 협의를 거쳐 ‘정보비’라는 이름으로 집행됐다가 1994년 ‘외교활동비’로 전환했다. 2010년부터는 외교네트워크 구축비로 이름을 바꿨다. 외교네트워크 구축비는 올해 87억원가량이 편성됐다. 내년에도 78억원 상당이 편성될 전망이다. 하지만 외교부가 보안을 이유로 세부 내역이나 관련 지침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아 ‘깜깜이 예산’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동 지역 B대사관은 지난해 외교단이나 대사단의 부인회 연회비 목적으로 130달러를 구축비에서 지출했다. 유럽 지역 C대사관은 한국기업 현지법인 경영진 초청 오찬에 1000달러 상당을 구축비로 결제했다.

선물 구입 목적으로 일괄 구매한 내역도 많았다. 유럽 지역 D대사관과 E대사관은 지난해 선물 구입으로 각각 1731달러와 4360달러를 구축비로 결제했다. 북미 지역 F대사관은 인터넷쇼핑몰에서 고급 초콜릿 1082달러어치를 구매했다. 아시아 식품 마켓이나 가전제품 매장에서 결제한 경우도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구축비가 본래 용도에 맞게 사용됐는지 외교부가 감독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 선물 지급 상세내역을 재외공관이 자체 관리하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감사를 나가면 재외공관에서 작성한 선물 세부내역을 확인할 수 있어 사후 관리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해당 재외공관에 직접 가서야 확인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식품마켓이나 가전제품 매장에서 사용한 금액에 대해서도 “선물 목적으로 구매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구축비의 허술한 관리는 지속적으로 지적된 문제다. 감사원이 201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183개 재외공관의 주요 인사 접촉기록을 확인한 결과 구축비 156만7000달러(약 17억2290만원)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3년 감사에서는 부인과 함께 골프를 치거나 여행을 다니는 데 구축비 6138달러를 쓴 외교관이 적발되기도 했다. 외교부 자체 감사에서도 유학생 격려 행사나 부동산 중개업자 초청오찬 등 일반 행사에 구축비를 부당하게 쓴 사례가 수차례 지적됐다. 이 의원은 “구축비를 ‘외교관의 용돈’으로 여기는 잘못된 관행이 여전하다”며 “외교부가 자체 전수조사를 통해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