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인 재팬] “日, 군국주의 사죄 않으면 구원 없다”

입력 2017-11-20 00:01
18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오차노미즈크리스천센터에서 일한(日韓)교회협의회 주최로 열린 행사에서 무토 기요시 목사(왼쪽)와 와타나베 노부오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무토 기요시(武藤淸·90·일본기독교단 소속) 목사가 불편한 몸을 가누며 강단에 섰다. 그는 잠시 객석을 바라보더니 “혹시 한국인이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40여명의 참석자 가운데 두 명이 손을 들었다. 무토 목사는 이들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지배와 탄압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를 드립니다.” 이어 허리를 90도로 숙였고 다시 무릎을 꿇더니 큰절을 했다.

18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오차노미즈크리스천센터에서 일한(日韓)교회협의회가 주최한 행사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 군 복무 경험을 가진 목회자들을 초청해 군국주의 실상을 고발하고 이를 반성하기 위한 ‘증언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는 무토 목사 외에도 와타나베 노부오(渡콱速爻?4·일본키리스토교회) 목사도 발언했다.

무토 목사는 한국의 독립기념관과 제암리교회 등을 방문했던 기억을 회상했다. “일본의 만행을 알게 되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더 신비한 일은 이 잔혹한 일본인들을 향해 한국 기독교인들은 용서를 말했다는 것입니다. 놀랍고 부끄럽습니다.”

무토 목사는 태평양전쟁 당시 육군에 복무했다. 그는 혈서를 쓰며 특공대원에 지원했던 맹렬 군인이었다. 특공대는 연합군 함정에 육탄으로 뛰어올라 공격한다는 목적으로 태평양전쟁 말기 조직됐다. 육군의 ‘가미카제’ 특공대인 셈이었다.

무토 목사가 지원서를 내자 부대장은 글을 하나 써줬다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천황,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나의 기쁨’이라는 글귀였다. 그는 일왕을 신으로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일왕의 항복 선언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무토 목사는 자신이 군부의 세뇌 속에서 철저히 이용당했음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이후 형의 방에 있던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알게 됐고 몽유병 환자처럼 거리를 헤매다 교회 앞에 쓰러져 목회자의 도움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는 이후 중학교 교사로 32년을 봉직하다 1994년 목사가 됐다.

무토 목사는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으로부터 소녀상을 주문해 교회 목양실에 설치할 정도로 한국인의 아픔에 동참해 왔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와 국가주의의 망령은 아직도 떠돌고 있으며 그 중심에 아베 신조 총리가 있다”며 “일본 그리스도인부터 사죄하고 용서를 빌지 않으면 일본의 구원은 없다”고 말했다.

와타나베 목사는 해군 장교로 1945년 1월부터 8개월간 오키나와 근해 전투에 참여했다. 그는 전장에서 수많은 주검을 목격하면서 의미 없는 전쟁에 치를 떨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군부는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나라를 위한 희생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분명한 거짓이었다”며 “일본은 지금도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만들어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와타나베 목사는 “기독교인은 예리한 눈을 개발시켜야 한다. 평화 일본은 끝나고 있다. 거대한 악이 재발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조장되고 있다. 이를 통찰하고 고발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권면했다.

두 목사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민을 향한 직접적 가해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군 생활과 일본 패망을 통해 일본 군국주의의 실상을 접했고 돌이켰다. 무토 목사는 이날 발언 말미에 “죽어서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 묘비명에 용서해 달라고 새겨 한국 민족 앞에 계속 속죄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도쿄=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