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사랑한 아이돌 전성시대… 그들의 이유 있는 도전

입력 2017-11-20 05:00

홍보-영역 확장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뮤지컬 위상 높아지자 실력 증명 기회로
제작사는 단기간 많은 관객 동원 장점
활동 중단 않고 병행하며 어린 나이 진출
아이돌간 경쟁 심해… 옥석 가리기 관건
이호원·케이·수호 첫 도전 ‘바람몰이’

올겨울 대형 뮤지컬 공연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출연진을 들여다보면 작품마다 한두 명씩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돌 1세대 배우 옥주현과 바다가 뮤지컬을 시작할 때와 달리 최근 아이돌의 뮤지컬 활동은 하나의 경향처럼 자연스러워졌다. 과거에는 뮤지컬 팬들의 저항이 있었다면 이제는 문화의 일부분으로 편입된 모습이다.

아이돌과 뮤지컬은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다. 뮤지컬 제작사는 아이돌의 인지도를 통해 홍보와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고, 아이돌은 활동 영역을 확장해 연기력과 가창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요즘 아이돌은 어릴 때부터 장기간 춤 노래 연기를 훈련받기 때문에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발판을 넓히려고 한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뮤지컬의 위상과 대중적 관심도가 대폭 높아지면서 아이돌이 뮤지컬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찾아보려고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반대로 제작사도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연극과 달리 단기간 내 많은 관객을 동원해야 살아남는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아이돌을 통해 이목을 집중시키려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돌의 수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아짐에 따라 뮤지컬에 뛰어드는 아이돌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돌이 나와 신기해서 극장을 찾는 관객이 비교적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생기고 기대를 뛰어넘는가 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생긴다. 단순히 아이돌의 출연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이 관건으로 자리 잡았다.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는 “과거 아이돌은 기존 활동을 정리하면서 다음 단계로 뮤지컬을 택했다면 요즘 아이돌은 활동을 병행해서 보다 어린 나이에 무대에 서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아이돌이 뮤지컬에 출연할 수 있는 문턱은 낮아졌지만 아이돌 출신이라는 희소성이 떨어지면서 그들 사이에서도 수준 차이를 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비판도 있다. 물론 아이돌의 수준이 높아지고 공연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구색 맞추기 활동 중 하나로 인식하는 경우에는 쓴맛을 보게 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여러 배우들과 함께 협업을 통해 무대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라 높은 인지도만 믿고 연습이 덜 된 경우 이미지를 깎아 먹는 사례가 되기도 한다.

최근 개막했거나 개막하는 뮤지컬에도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활약이 거세다. 그 중 3명은 뮤지컬 데뷔 무대를 가졌거나 앞두고 있다.

보이그룹 인피니트 출신 배우 이호원은 다음 달 5일 개막하는 ‘모래시계’에서 재희 역을 맡았다. 이호원은 지난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뮤지컬은 2∼3시간 집중해 노래와 연기를 할 수 있어 매력적”이라며 “첫 도전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평가하는 마음으로 보실 수도 있지만 잘 보이겠다는 마음보다 극에 녹아들고 싶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뮤지컬을 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재밌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걸그룹 러블리즈의 멤버 케이는 지난달 시작한 ‘서른즈음에’에서 옥희 역으로 첫 뮤지컬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케이는 통화에서 “그동안 뮤지컬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며 “실제로 공연을 하면 할수록 춤 노래 연기를 할 수 있는 뮤지컬의 매력에 빠지고 있다. 무대에서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어 정말 짜릿하다”고 밝혔다.

보이그룹 엑소의 멤버 수호는 다음 달 15일 개막하는 ‘더 라스트 키스’에서 황태자 루돌프 역으로 신고식을 앞두고 있다. 수호는 “처음 뮤지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 많은 분들과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며 “엑소 팬들은 물론 뮤지컬 팬들께도 좋은 공연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