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결재” 이병기 구속… “인수인계” 이병호 기각 왜?

입력 2017-11-18 05:05

이병기 “최경환에 상납” 실토에도
상납금 월 1억으로 증액 등
적극적 역할 탓에 구속 못 면해

상납행위 시작한 남재준도 구속

이병호 “朴이 직접 요구했다”
결정적 진술이 기각에 영향준 듯


구속 문턱에 나란히 섰던 박근혜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장 3명의 처지가 17일 새벽 갈렸다. 전임자 2명은 구치소로 들어갔고, 지난 정부 마지막 국정원장은 집으로 갔다. 국정원 특수활동비 40억여원을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를 함께 받고 있지만 추가 범죄혐의 연루 여부, 영장실질심사 법정에서의 태도 등에 따라 구속영장 발부 또는 기각으로 나뉘었다.

이병기(70) 전 원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에게 국정원 특수공작사업비 1억원을 전달했다’는 자수서를 냈다. 전달 시점은 2014년 10월쯤으로, 최 의원이 국정원 예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있을 때였다.

검찰은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도 이를 뒷받침하는 진술과 자료를 확보했다. 국정원 돈 상납 수사 불똥이 친박계 좌장인 최 의원에게로 튀었다.

이 전 원장이 최 의원 건을 실토한 건 수사 협조 의사를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은 단순한 결재자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을 수 있다. 그는 실제 국정원 자금 관리를 총괄하던 이 전 실장의 건의에 따라 집행을 승인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구속을 피하진 못했다. 2014년 7월 취임 직후 월 5000만원이던 상납금을 1억원으로 올리도록 하고, 청와대 정무수석실로도 매월 800만원씩 전달하라고 지시한 점 등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원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이후에도 추명호(54·구속) 전 국정원 국장에게 “(정무수석실로) 돈이 잘 가고 있나”며 챙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남재준(73) 전 원장도 함께 수감됐다. 2013년 5월부터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을 시작한 장본인이라는 게 결정적 이유였다. 현대제철을 압박해 친정부 성향의 대한민국재향경우회에 25억원가량을 지원하도록 한 혐의도 달려 있다.

셋 중 유일하게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병호(77) 전 원장은 지난 16일 영장심사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돈 상납을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 때는 대통령 지시 여부에 대해 끝까지 함구했었던 터라 그의 돌발 발언에 검찰도 놀랐다고 한다.

그는 이 전 실장에게 돈 상납 사안을 인수인계 받았으며, 박 전 대통령도 직접 연락해 “하던 대로 하라”고 요구했다는 주장을 폈다. 지난해 3월 청와대가 총선을 앞두고 진행한 여론조사 비용을 5개월 뒤 국정원 돈 5억원으로 대납한 혐의와 관련해서는 “청와대 측이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줬지만 사용처는 몰랐다”고 호소했다.

결과적으로 이병호 전 원장은 지난 정부 국정원장 중 가장 긴 2년3개월을 재직하며, 가장 많은 30억원 안팎을 상납하고도 귀가할 수 있었다. 전임 원장 2명은 영장심사에서도 돈 상납 최초 지시자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버텼다고 한다.

검찰은 이병호 전 원장을 19일 다시 불러 박 전 대통령의 지시 관련 부분을 추궁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그의 혐의도 다른 2명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구속영장 재청구도 검토되고 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