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진동에도 ‘혹시 지진?’ 화들짝… 트라우마 심각

입력 2017-11-17 18:18 수정 2017-11-17 23:59
소방대원들이 17일 오전 경북 포항시 흥해읍의 한 고층 상가건물 옥상에서 이틀 전 지진으로 파손된 굴뚝을 철거하기 위해 끈 하나에 의지한 채 높은 구조물 위에서 작업하고 있다. 뉴시스
대피소에 머무는 이재민들
정신적 고통 호소 많아

경주 지진 땐 80.9%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고위험군

피해 지역 수험생의 경우
‘지금, 여기’에 집중
현실감 되찾기 노력해야

실내체육관에 ‘지잉’ 하며 높은 소리가 울렸다. 무대를 등지고 앉아 있던 조은호(75)씨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이크 소음이라는 걸 확인하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젠 마이크 켜지는 소리에도 놀란다. 전부터 앓던 불면증은 더 심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진 3일째인 17일 오전 10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주민의 임시대피소인 이곳에는 여전히 주민들이 머무르고 있다. 여진은 크게 줄었지만 집으로 돌아갈 엄두를 못 내는 눈치다. 사소한 소리나 충격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작은 진동에도 고개를 흔들며 다시 한번 주변을 살핀다. 이른바 상상 지진이다. 이곳 주민들은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0시부터 오후 10시45분까지 포항에선 모두 세 번의 여진이 발생했다. 오전 1시17분과 8시25분, 오후 6시57분 본진 진앙지에서 1∼5㎞ 떨어진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여진은 감소 추세다. 첫날 총 33회의 여진이 있었고, 이튿날엔 16회였다. 강도도 약해졌다.

주민들은 그러나 작은 여진에도 공포를 느끼고 있다.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이재민들 중에는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한 주민은 “밤에 크게 앓는 소리를 내거나 스트레스로 심한 잠꼬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여진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지난해 경주 지진 때도 확인됐다. 이기영 부산대 교수팀이 지난해 11∼12월 경주시민 279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80.9%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고위험군에 해당됐다. 여진이 이어지면서 본진 2∼3개월 후에도 충격이 해소되지 못했다. 이 교수는 “경주시민들은 잦은 여진으로 상상 지진과 같은 불안·공포감을 느꼈다”고 분석했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불안·공포뿐만 아니라 불면증이나 식욕저하, 기억력의 일시적 감퇴, 알코올 중독 등 인지·신체적 능력도 영향받을 수 있다”며 “정상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런 증상들을 두고 주변 사람들과 계속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9·12 때 지진을 한 번 경험한 주민들은 더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을 수도 있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포항시 북구는 지난해 경주 지진의 진앙지에서 불과 43㎞ 떨어져 있다. 당시 포항에서도 진도 5의 충격이 관측됐다. 채 교수는 “외상은 여러 번 겪을수록 정신적 충격이 심해진다”며 “안정을 찾은 뒤 다시 외상을 경험하면 이전보다 악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수능을 닷새 앞둔 수험생들은 현실감을 되찾기 위해 ‘지금,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지진 피해 지역 수험생이라면 지난 16일부터 파견된 현장 심리지원단 등 전문가들의 도움도 적극 받는 게 좋다. 이윤호 한국재난심리연구소장은 “지진을 겪은 뒤엔 붕 뜬 듯한 느낌이 계속될 수 있다”며 “상담을 꾸준히 받되 평소에도 심호흡을 하면서 땅을 디디고 서 있는 발의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연 기자, 포항=이택현 기자 jaylee@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