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올 3월 ‘내진설계기준’ 강화했지만... 새 기준 적용 안돼

입력 2017-11-17 18:14 수정 2017-11-17 21:33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위치한 대성아파트 주민들이 이삿짐을 챙겨 집을 떠나고 있다. 한 아주머니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지난 15일 발생한 지진의 진앙지에 인접한 이 아파트는 붕괴 위험이 확인돼 출입이 통제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대성아파트를 비롯해 포항시 북구의 16개 건물이 출입통제를 받고 있다. 포항=최현규 기자

올 3월 새 기준 마련하고도
후속 건축기준 개정작업 미적

옛 기준으로 내진보강한 건물
재보강 없이 내진성능 인정
日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도
기준 미적용 건물 피해 집중

63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1995년 일본 한신·아와지 대지진. 20여만채의 가옥을 포함해 당시 전파 또는 반파됐던 건축물 대부분은 1981년 이전에 지어진 것이었다. 일본은 1981년부터 각종 시설물이 규모 6∼7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건축돼야 한다는 새 기준을 적용했다.

지난해 9월 경주 지진을 겪은 뒤 우리 정부도 기존보다 강화된 새 내진설계 기준을 마련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내진보강 작업의 경우 새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있다. 기관별 소관 시설물에 대한 건축 기준을 개정하는 작업이 늦어지고 있어서다. 여기에다 내진보강 작업을 진행할 건축구조기술사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17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지진방재 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지난 3월 ‘내진설계 기준 공통 적용사항’을 발표했다. 새 기준은 기존의 것과 분류체계부터 다르다. 5개로 분류했던 지반의 종류는 6개로 늘었고, 기준마다 적용되는 지진하중 역시 다르게 산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현재 40.9% 수준인 시설물 내진율을 2020년까지 54.0%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내진보강 작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공항, 도로 및 철도, 다목적댐 등 총 11개 기관이 관리하고 있는 31종의 시설물에 대한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된 새 기준에 맞춰 개정하는 후속 조치는 더딘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3월 새 기준 발표 때 시설별 내진설계 기준 개정 전까지 내진 보강을 끝낸 시설물들은 ‘내진 성능이 확보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기준이 강화됐다는 것은 기존 기준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미 보강 작업이 완료된 시설물들일지라도 새 기준에 따라 재보강 작업을 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내진설계확인서를 검증·발급할 권한을 가진 건축구조기술사는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지역별 격차가 극명하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가 지난 7월 회원 9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72%는 서울·경기도에 몰려 있었다. 세종시는 한 명도 없었고 강원도·제주도 1명, 전남은 2명에 불과했다.

내진설계를 담당하는 전국 400여개 구조설계사무소 가운데 142개는 사무소 1곳당 구조기술사가 평균 1.5명이었다. 68%(96곳)는 기술사 한 명이 운영하고 있었다.

김성호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5층 이하 건물은 구조기술사가 검증할 필요 없이 비전문가도 내진설계를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점도 문제”라며 “그만큼 수요가 적어 구조기술사 인력 양성도 미흡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최예슬 기자,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