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사퇴, 예고된 수순… 文정부 적잖은 부담

입력 2017-11-17 05:03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1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사퇴 회견을 한 뒤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청와대 수석급이 사퇴한 것은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에 이어 두 번째다. 이병주 기자

적폐청산 작업 ‘살아있는 권력’으로 확대되나

靑 내부선 점차 고위직으로
수사 확대될지 모른다 우려

檢, 혐의 입증에 자신감

田, e스포츠협회 직원들과
수사 이후 접촉 정황 포착

“野 사정 신호탄 아니냐”
한국당도 분위기 뒤숭숭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의 사퇴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정무수석 직을 유지한 채 검찰 수사를 받을 경우 청와대의 부담이 크고, 검찰 수사의 공정함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박근혜정부를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이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확대됐다는 측면도 강하다. 청와대도 적지 않은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이 혐의를 두고 있는 ‘제3자 뇌물죄’의 경우 입증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기소는 되더라도 무죄를 다퉈볼 수 있다는 긍정적 시각이 있다. 반면 검찰이 상당부분 진술을 확보한 만큼 무죄 판결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동시에 나온다.

검찰의 칼끝이 전 수석을 넘어서 다른 사람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이미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도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전 수석의 혐의는 2015년에 이미 한 차례 불거졌던 사안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검찰이 과거의 일(전 수석),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인사(탁 행정관)를 시작으로 점차 청와대 고위직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검찰이 청와대 인사들의 ‘과거’를 뒤질 경우 과거 정권을 상대로 한 적폐청산 작업에도 타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등 야당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조율했던 전 수석이 사퇴하면서 당장 대국회 관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청와대는 일단 후임 정무수석을 조속히 임명하겠다는 계획이다. 취임 직후 검증을 끝낸 후보들이 적지 않아 후임 임명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강기정 오영식 최재성 김교흥 등 전직 의원들 이름이 다시 거론된다. 다만 청와대는 지나치게 강성 인사는 피하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자칫 보수야당을 완전히 배제한 채 여론몰이 식으로 정국을 운영하려 한다는 사인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전 수석 혐의 입증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조사의 불가피함을 공식적으로 밝힐 만큼 수사가 진척됐다는 판단이다. 검찰은 전 수석이 한국e스포츠협회를 통해 각종 이권을 챙긴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사건 수사 이후 전 수석이 협회 직원들과 접촉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말맞추기 등 증거인멸 가능성도 있다는 게 검찰 생각이다.

“전 수석 사퇴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논평을 낸 자유한국당도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전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가 야권을 향한 사정 드라이브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해석 때문이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검찰 조사가 예상보다 더 노골적이고 광범위해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조차 못하겠다”고 말했다. 원내대표를 역임한 5선의 원유철 의원이 수억원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고, 재선인 이우현 의원도 한 인테리어 업자로부터 불법 자금 1억원을 수수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국민일보 11월 14일자 1면 참조). 여기에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재직 당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돈 1억여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요즘은 동료 의원들끼리 만나면 ‘간밤에 안녕하셨느냐’는 얘기부터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글=강준구 황인호 이종선 기자 eyes@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