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前 국정원장 “朴이 먼저 상납 요구했다”

입력 2017-11-16 18:51 수정 2017-11-17 00:16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씨(왼쪽부터)가 16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뉴시스

직접 지시받고 특활비 제공
李 영장실질심사서 털어놔

남재준 “취임 후 안봉근이
돈 내야 한다고 귀엣말”

檢, 대가성 등 더 확인 후
박 前대통령 직접 조사 계획


이병호(77) 전 국가정보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고 국정원 돈을 청와대에 상납했다고 시인했다. 이 전 원장은 16일 오후 2시부터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이같이 진술했다.

그는 검찰 조사 때는 돈 상납 최초 지시자가 누군지 끝내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영장심사에서 권 부장판사가 ‘누가 돈을 달라고 한 거냐’고 묻자 “비공개 법정이라 솔직히 말씀드린다”며 박 전 대통령 이름을 댔다고 한다.

2015년 3월 취임한 이 전 원장은 이헌수 당시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게 전임 원장의 특수활동비 상납 사안을 보고받았으며, 그 무렵 박 전 대통령도 직접 자금 제공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원장은 사실관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위해 활동하는 데 필요한 돈으로 생각했다”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는 이 전 원장을 비롯한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장 3명의 영장심사가 차례로 열렸다.

오전 10시30분부터 영장심사를 받은 남재준(73) 전 원장은 “국정원장 취임 후 청와대에서 우연히 마주친 안봉근(51·구속) 전 비서관이 귀엣말로 ‘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누군가가 ‘청와대에 돈을 줘야 한다’고 얘기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 전 원장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버텼지만 이 전 원장의 사례에 비춰보면 역시 박 전 대통령일 가능성이 높다.

남 전 원장의 변호인은 취재진에게 “청와대에서 먼저 돈을 달라고 하니 ‘청와대 돈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돈을 줬을 뿐”이라며 “누가 달라고 했으니 줬지, 먼저 상납한 것은 아니다. 사실 상납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검찰 조사 도중 긴급체포된 이병기(70) 전 원장은 구치감에서 대기하다 오후 3시 법정에 출석했다. 그 역시 “청와대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돈을 올려보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다음 주 중 뇌물 최종 귀속자이자 상납 지시자로도 지목된 박 전 대통령 대면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글=신훈 이가현 기자 zorba@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