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1월 19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2)

입력 2017-11-18 00:06

찬송 : ‘죄짐 맡은 우리 구주’ 369장(통 48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6장 9∼13절


말씀 :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선과 악의 기준이 되는 자리에 섭니다. 자신의 기준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관점도 바뀌게 됩니다. 관점이 달라지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은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동산을 거닐면서 그 나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분의 초월성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다른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유혹에 빠져 관점이 달라지고 나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과실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도 보였습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전에는 관심도 없던 과실인데 너무 탐스럽게 먹고 싶은 과일로 변했습니다. 이처럼 관점이 달라지면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만약 세상이 예전과 다르게 보인다면 여러분의 관점이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는 마음이 무너졌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나와 비슷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이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따먹습니다.

결국 그들이 한 짓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준을 버리고 자신의 기준을 따라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 근거가 되어 정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하면 이 땅에서도 우리의 영생의 문제도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동성애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것을 금하셨을까요. 금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기준이 되어서 하나님이 악이라 규정하신 것을 자기 기준에 따라 괜찮다고 결정해버리면 그것은 재앙으로 인간에게 돌아옵니다. 질병과 우울증, 불행으로 반드시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내 기준이 충돌할 때 자신의 기준을 내어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붙잡고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삶입니다.

기도 : 하나님! 주님의 기준은 우리를 향한 최선이며, 우리를 향한 지극한 사랑임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을 내 기준으로 무너뜨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기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중식 목사(포항중앙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