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국내산 방어 사건’ 86명 전원 무죄… 법원 “혐의 충분히 입증 안돼”

입력 2017-11-15 18:55 수정 2017-11-15 21:49
“지금 서초역 사거리랍니다!” “오고 있는 중입니다!”

15일 오전 10시30분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 일본산 방어를 국내산으로 둔갑해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무더기로 넘겨진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 86명의 선고 공판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3단독 명선아 판사가 피고인 86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출석확인을 하다가 법정에 도착하지 않은 피고인들에 대해 묻자, 동료 피고인들이 손을 번쩍 들고 지각 사유를 알렸다. 방청석 86석에는 피고인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 재판 때문에 이날 대법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심문은 한 층 아래에 있는 중법정으로 변경됐다.

20여분간 출석 확인을 마친 명 판사는 “피고인들은 모두 일어서 달라”고 명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상인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우르르 일어났다. 명 판사는 “피고인들이 일본산 방어를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라고 선고하자 법정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이 재판에 넘겨진 것은 한 방송사에서 보도된 먹거리 관련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해당 방송을 본 관할서는 조사에 착수했다. 담당 경찰관은 평소 알고 지내던 이모씨를 손님으로 위장시켜 “일본산 방어를 국내산이라고 속이는 장면을 촬영해오라”고 요구했다. 이 동영상은 검찰이 제출한 핵심 증거였다. 이씨는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국내산 등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은 곳도 많았고, 수족관에 방어가 아예 없는 가게도 있었다”고 증언했고 이날 전원 무죄 판결로 이어졌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