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사실상 ‘디폴트’

입력 2017-11-16 05:04

피치·S&P, 디폴트 전 단계 강등
유가 하락에 좌파 정책 실패 겹쳐


오일머니로 한때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했던 베네수엘라가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렸다. 국제유가 하락이라는 외부 요인에 좌파 포퓰리즘 정권의 실정이 결합된 결과다. 14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회사 2곳이 베네수엘라 국가 신용등급을 전면적인 디폴트(채무불이행) 바로 전 단계로 강등했다. 피치는 ‘제한적 디폴트(Restricted Default)’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선택적 디폴트(Selective Default)’로 내렸다. 30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음에도 수억 달러의 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해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니콜라스 마두로(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 12일 TV 연설에서 “베네수엘라는 절대로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분명한 전략으로 대외채무에 대해 재협상하고 새로 빚을 내서 먼저 꾼 것을 갚아나갈 것”이라고 밝혔었다.

베네수엘라의 총부채 규모는 1050억 달러(116조9000억원)로 추산된다. 그러나 보유 외환은 100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동안 전통적인 사회주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의 도움(상환기간 연장)으로 버텨왔지만 지난 8월 미국이 고강도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는 마두로 정권을 ‘폭력적인 마약 국가’로 규정하며 독재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자본주의는 지구를 파괴한다”며 사회주의 유토피아 건설을 약속한 인물이다. 그러나 현 상황은 유토피아와 거리가 멀다. 베네수엘라 야권 인사는 “대재앙 속에 살고 있다”고 표현했다.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에 의존해오다 유가 폭락으로 경제가 파탄 났다. 국내총생산(GDP)은 2014년 이후 3분의 1 이상 줄었고, 현지 통화(볼리바르)의 달러화 대비 가치는 지난 5년 동안 99.97% 폭락했다.

디프테리아, 말라리아, 매독 등 빈곤과 밀접한 질병이 창궐하고 있지만 의약품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식량난도 극심해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수도 카라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당연히 정권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지만 야권이 분열된 탓에 마두로 정권이 당장 무너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카라카스의 여론조사업체에서 일하는 루이스 레온은 “경제가 더 나빠지면 마두로 정권이 위험해질 것이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쿠바와 북한, 러시아, 짐바브웨를 보라”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