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정보원을 범죄자 소굴로 취급해서야

입력 2017-11-15 17:52
검찰이 15일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해 남재준·이병호 전 원장을 포함해 박근혜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3명 모두에게 영장이 청구됐다. 이들은 16일 불과 한 두 시간 간격으로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을 예정이어서 국민들은 전직 국정원장들이 줄줄이 구치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TV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 국정원의 위상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추락했는지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참담하다.

이들 전직 국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40억∼50억원을 청와대에 상납했다는 것이다.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사용한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다.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곳이기에 믿고 맡긴 세금을 권력자의 쌈짓돈으로 빼돌렸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뇌물사건보다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다. 검찰 입장에서는 범죄사실이 드러났는데 덮어둘 수도 없는 일이다. 관행적으로 있었던 일이고 국정원장으로서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는 해명을 놓고 옳고 그른지를 다툴 필요도 없다. 이는 최종적으로 법정에서 재판부가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장이 모두 구속되면 지난 8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된 원세훈 전 원장을 포함해 전(前) 정권과 전전(前前) 정권의 국정원장 4명이 감방에 있게 된다. 역대 국정원장이 정권이 바뀐 뒤 사법처리를 면치 못해 ‘국정원 흑역사’라는 말까지 있지만 이번 경우는 지나치다. 국정원 직원들도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구속자도 속출하고 있다. 은밀하게 일하는 것이 생명인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범죄자의 소굴로 전락해 수사기관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지는 형국이다. 과거 법을 어기면서 잘못한 일을 밝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가 국정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같은 몰아치기 방식은 곤란하다. 정교함이 결여된 수사는 반대 여론을 확산시켜 꼭 필요한 개혁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사법적 판단이 모두 끝난 뒤 국정원의 위상을 어떻게 복원할지를 생각하는 정무적 판단도 절실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이 요동치고 보복성 인사가 난무해서는 직원들이 국가안보의 최일선에서 주어진 임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제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직원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처럼 업무와 조직체계가 외부로 노출되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다른 나라의 정보기관과 협조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북한은 핵 위협 다음 단계로 국지적 도발을 일으키거나 해외에서 우리 국민을 상대로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보기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