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생체 폐이식 국내 첫 성공

입력 2017-11-15 22:10
생체 폐 이식을 받은 오화진씨(왼쪽 세 번째)와 폐 이식 수술을 국내 최초로 성공시킨 서울아산병원 박승일 교수(왼쪽), 폐 일부를 이식해준 오씨의 부모가 수술 성공을 기념해 케이크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기약 없이 뇌사자의 폐를 기다리던 스무살 딸을 위해 부모는 자신들의 폐 일부를 스스럼없이 떼어 줬다. 딸은 부모의 폐를 이식받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같이 살아났다.

서울아산병원이 국내 처음으로 뇌사자가 아닌 정상인의 폐를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15일 밝혔다. 이 병원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를 비롯한 50여명의 의료진은 지난달 21일 말기 폐부전으로 폐 기능을 완전히 잃은 오화진(20)씨에게 아버지 오승택(55)씨의 오른쪽 폐 아랫부분과 어머니 김해영(49)씨의 왼쪽 폐 아랫부분을 떼어내 이식했다.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견뎌낸 오씨는 현재 건강을 회복 중이다. 폐를 준 부모도 수술 엿새 만에 무사히 퇴원했다.

오씨는 2014년 갑자기 숨이 차고 체중이 불어나면서 몸이 붓기 시작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폐동맥이 두꺼워지고 압력이 올라 심장과 피를 주고받기 어려워지는 ‘특발성 폐고혈압’이란 병이었다. 심장도 망가져 급성 심장마비가 올 수 있었다. 오씨는 지난해 7월 한번 심장이 멈췄으나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다시 심장마비가 온다면 소생 확률은 20%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장기이식법상 생체 이식이 가능한 장기는 신장·간·골수·췌장·췌도·소장 6개뿐이다. 폐는 뇌사자의 것만 이식할 수 있지만 기증받기 위한 평균 대기기간은 4년이나 된다.

죽어가는 딸을 보다 못한 부모가 나섰다. 생체 폐이식이 합법인 일본에서 명성이 높은 의사와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 8월에는 국민신문고에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폐의 전부라도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나와 아내의 폐 일부를 딸에게 주는 생체 폐이식을 허락해 주세요’라는 간절한 글을 올렸다.

의료진도 현행법상 합법이 아닌 생체 폐이식 시행을 위해 흉부외과학회, 이식학회 등에 의료윤리적 검토를 의뢰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국회에 보고해 생체 폐이식의 불가피성을 설득했다. 복지부는 장기이식윤리위원회를 열어 수술을 사실상 허용했다. 향후 법령을 개정해 생체이식 대상 장기에 폐를 포함시킬 방침이다.

아버지 오씨는 “기약 없는 이식 대기기간 중 심장이 언제 멈출지 몰라 매일이 지옥 같았지만 수술 후 천천히 숨을 쉬는 연습을 하면서 건강을 되찾고 있는 딸을 보니 꿈만 같다”고 했다.

폐는 오른쪽은 세 개, 왼쪽은 두 개의 조각으로 이뤄져 있다. 생체 폐이식은 기증자 두 명의 폐 일부를 각각 떼어내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박승일 교수는 “뇌사자 폐이식을 기다리는 300여명의 말기 폐부전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