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증세는 공론화 적용 대상 아니다

입력 2017-11-15 17:53
청와대와 여권이 부동산 보유세 인상 여부를 신고리 5, 6호기처럼 공론화 방식으로 결정하려 하고 있다. 청와대 직속기구로 연내 출범하는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조세특위)를 통해 여론을 모아 조세정책의 큰 틀을 짠다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조세특위 35명의 위원 중 절반 이상을 시민단체, 세제 전문가 등 민간위원으로 구성하고 위원장도 민간이 맡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증세 문제가 원전처럼 갈등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공론화 절차를 바탕으로 여론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인 듯하다. 그러나 여러모로 적절치 않아 보인다. 공론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세금은 원전처럼 공론조사의 숙의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공론화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원전은 안전문제가 직결돼 국민의 일반 여론이 아니라 학습을 거친 숙의에 근거한 의사를 물을 필요가 있었다. 세금은 다른 사안이다. 재정수요와 재정역할에 따라 정부와 국회가 판단하면 된다. 공론조사를 거친 국민들의 숙의된 의사를 물을 대상이 아니다. 세금은 여느 일반적인 정책과 다를 게 없다. 증세를 할지, 하지 않을지 결정에 따른 국민적 지지와 비판은 정부가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묻고 싶다. 국민과 약속했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한데도 국민들이 반대하면 세금을 더 걷지 않고 정책 실천을 포기하겠다는 말인가.

공론화를 함부로 갖다 써서는 안 된다. 공론화 과잉은 정책과 정치의 실종을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정부의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공론화의 목적은 공론 형성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것이다. 공론화 과정에 갈등관리 방안이 반드시 포함되는 이유다. 세금에까지 공론화 잣대를 들이대면 오히려 갈등을 촉발할 수 있을 뿐더러 공론화의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