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인천 부평구 마분로 은광학교. 피아노 의자 대신 휠체어에 앉은 곽현민(10·백질연화증, 뇌병변장애 1급)군이 힘겹게 검지를 폈다.
“현민아. 힘 빼고 천천히. 검은 건반 세 개 앞이 파였지? 그럼 솔은?”
떨리는 손으로 건반 하나를 누르자 피아노가 ‘솔’ 음계를 뱉어냈다. “우와∼ 우리 현민이 최고다.” 현민이 옆에 나란히 앉은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조용히 아들을 바라보던 백은숙(43·하나비전교회) 집사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백 집사의 하루는 고달프다. 분리불안 증세와 신체 강직 때문에 밤새 뒤척이는 현민이를 토닥이느라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하기 일쑤다. 아들이 눈을 뜨면 엄마의 손발은 더 바빠진다. 혼자선 몸을 가눌 수 없는 아들을 씻기고 먹이는 데만도 한참 걸리지만 치료와 수업 시간에 맞추기 위해선 숨 돌릴 틈이 없다. 오전 9시 지체장애학교 수업, 10시30분 물리치료, 식사 후 오후 수업, 인지치료와 음악치료가 이어지는 동안 엄마는 아들의 교실과 치료실 옆에서 그림자처럼 함께한다.
임신 26주 만에 0.87㎏의 미숙아로 태어난 현민이는 생후 3개월여 시간을 엄마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와 검사실에서 보냈다. 엄마는 아들의 숨소리보다 의사의 장애진단을 먼저 들어야 했다. 백질연화증(산소 결핍으로 인해 뇌의 조직 부위가 괴사하는 질환)과 이로 인한 뇌병변장애. 자가 호흡이 안 되는 상태에서 뇌출혈이 일어난 게 문제였다.
생업이 중단됐고 병원과 복지관을 오가는 ‘유랑민 생활’이 시작됐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각종 검사, 병실 입원비, 치료비 등은 세 식구의 보금자리를 앗아갔다. 아들의 치료를 두고 아내와 갈등을 빚었던 아빠는 현민이가 다섯 살 되던 해 결국 가정을 등졌다.
“눈앞이 캄캄했죠. 그나마 버팀목이 돼 줄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4년 전 현민이가 고관절 교정 수술의 일종인 ‘대퇴골교정적절골’ 수술을 받고 나선 하루하루를 눈물로 살았어요. 13시간 동안 수술대에 올랐던 아이가 허리부터 발목까지 통 깁스를 하고 나왔는데 어찌나 안타깝던지. 고관절이 어긋나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현민이를 부여잡고 같이 울었죠.”
현민이의 양쪽 무릎엔 2년 전 두 번째 수술 때 박아 둔 철심들이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를 붙들고 있다. 아들을 바닥에 누인 채 옷을 갈아입히던 백 집사는 찢고 꿰매놓은 수술자국들을 보며 “전엔 바라만 봐도 눈물이 앞섰는데 이젠 현민이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감격스럽고 감사하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엔 현민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땅을 딛고 섰다. 전기료 수도료 식비 등을 줄이더라도 재활치료비만큼은 챙긴 덕분이다. 3년 전 파산신청을 한 뒤론 기초수급, 장애수당으로 통장에 찍히는 93만원이 현민이네 한 달 수입이다. 그중 70만원이 고스란히 치료비로 들어간다. “작업치료를 더 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의사 소견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미안하기만하다.
현민이가 주저앉기만 했던 몸을 일으키는 동안 엄마의 몸은 조금씩 내려앉았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아들을 들어 올리고 내리면서 심한 디스크가 생겨 지금은 5분을 서 있기 힘들다. 바닥에서 신체고정 의자로 아들을 들어앉힌 백 집사는 가빠진 숨을 정돈하며 무릎을 꿇고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주님, 현민이의 몸에 힘을 주세요. 그리고 귀한 한 걸음을 허락해주세요.”
인천=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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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품은 아이들 ⑨] 밤새 뒤척이는 아들 곁에서 엄마도 늘 뜬눈
입력 2017-11-16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