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종교신학 강의’ 정재현 교수] 다종교 사회 기독교인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입력 2017-11-16 00:04 수정 2017-11-17 15:58
정재현 연세대 교수가 이달 초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다종교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타 종교를 바라보는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한국교회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타 종교인을 대할 때 포교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어떻게 해서든 복음을 전하려 한다. 정반대로 아예 배척하는 경우도 적잖다. 과연 그것이 최선의 태도일까. 불교 천주교뿐 아니라 무종교, 이슬람권에서 건너온 사람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갈수록 다종교 사회가 되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기독교인의 갈 길은 무엇일까.

정재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종교철학 주임교수는 ‘종교신학 강의’(비아)에서 이 문제를 작심하고 다룬다.

최근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한국의 기독교인 중 80%는 배타주의, 15%는 포괄주의, 5%는 다원주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며 “세 부류 모두 명확한 한계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종교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주의’, 다른 종교를 틀린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교보다 낮은 수준의 것으로 보고 품어주는 ‘포괄주의’, 마지막으로 기독교를 여러 종교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다원주의’다. 다문화 다인종 사회인 서구사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데 비해 한국에서는 여전히 배타주의적 태도가 지배적이며, 다원주의라는 말만 나와도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정 교수는 힌두교와 가톨릭을 오갔던 신학자 라이문도 파니카의 ‘에큐메니컬 에큐메니즘’이라는 입장을 살펴보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 파니카는 인간이 절대자를 자기 수준의 지식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인식론적 천박함’과 끊임없이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이 형성되어 간다는 개념의 ‘구성적 상대성’을 토대로 타 종교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행위를 비판한다.

정 교수는 파니카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어떤 이름을 가진 종교 자체가 아니라 각각의 인간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한 이름의 종교 안에는 해당 종교의 성향뿐 아니라 다른 이름의 종교들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종교학계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같이 쓰고는 있지만 한국 기독교 안에서도 각 교단이나 교파에 따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 교수는 “어떤 종교든 무색투명한 순수지평을 가진 것은 없다”며 “언제나 종교는 해당 사회, 문화와 엮여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종교를 가진 사람도 땅 위에 발을 딛고 살고 있다”면서 동시에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호모 렐리기오수스)’의 속성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인의 문화적 종교적 심성을 살펴보면, 무교적인 무의식이 가장 깊이 자리 잡고 있다”며 “무교가 50% 정도를 차지한다면 유교는 30%, 그밖에 요인이 20%가 된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한국 기독교인의 종교적 심성을 따져보면 20% 정도만 기독교인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앞으로 이를 30%, 40%, 50%로 어떻게 확대해 나갈지 고민해야 하는데 ‘기독교인’이라는 명칭으로 이런 성분 분석을 가려버리고 있다”며 “20% 기독교인이 스스로를 100% 기독교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불교의 역사가 짧지 않음에도 한국인의 종교적 심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기독교도 문화의 표피층에 머물다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신학이 사회는 고사하고 교회에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반지성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져다 들이대면서 지성이나 성찰이 비집고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개혁 캐치프레이즈 가운데 하나인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오직 은총)’가 마술적인 개입의 방식으로 자리잡아버렸다”고 개탄했다.

정 교수는 연세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미국 에모리대에서 철학적 신학으로 석사 학위를, 종교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종교적 인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신앙 성찰을 주제로 연구하면서 종교인의 신앙의 진정성이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해 왔다. 조부, 부친, 조카에 이르기까지 집안에 목사가 14명이나 되는 신앙 가문에서 자랐고, 본인도 결국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학기 초반 강의를 듣는 학생들 사이에서 “연세대 신과대에 이상한 교수가 있다더니 이 분이었구나”라는 수군거림이 나온다. 하지만 강의가 3분의 2 지점을 넘어서면 “신앙의 길은, 일사불란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며 “어떻게 신앙생활 하고, 목회를 해 나갈지 다시 생각해보겠다”며 간증 아닌 간증을 하는 학생들이 등장한다고. 다른 종교를 연구하고 철학적 사유가 깊어질수록 믿음이 흔들리진 않을까. 정 교수는 “지성은 가치를 선판단해서 신앙에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종교신학적 연구의 핵심은 우리가 특정 종교의 이름을 달고, 해당 종교를 100% 대변하고 있다는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음을 깨닫고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