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박번순] 신남방정책의 당위성과 성공 요건

입력 2017-11-15 17:41

문재인 대통령이 약 일주일 동안 아세안 국가들을 순방했다. 아세안 최대의 국가로 비동맹운동을 열었던 인도네시아, 우리와 경제 협력이 가장 활발한 베트남, 그리고 아세안 의장국인 필리핀을 잇달아 찾았다. 아세안 순방 기간에 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을 통해 신남방정책, 즉 ‘아세안과 함께 더불어 잘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 형성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신남방정책의 핵심은 아세안에 4강 수준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아세안에서 새로운 번영의 축을 만들되, 강대국과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아세안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 차별화는 사람 중심의 국민외교, 국민이 안전한 평화 공동체, 그리고 더불어 잘사는 상생 협력이다.

늦었지만 우리 정부가 아세안을 중시하고, 새 전략을 마련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일본은 1977년 후쿠다 독트린 이후 아세안에 공을 들였다. 그동안 우리의 대(對)아세안 정책은 단발적이고 중상주의적이었으며 중장기적인 큰 틀을 갖지 못했다. 이제 정치, 경제, 외교의 다각화를 기본으로 하는 신남방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철학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영원한 제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치·경제적으로 한 강대국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명·청 교체기에 우리가 처했던 상황은 우리가 잘 아는 바다. 1790년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에 사신단으로 갔던 서호수가 남긴 연행기에 의하면 건륭제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정조대왕의 안부를 묻고, 왕자의 탄생을 축하했다. 청나라에 의지한 세계는 완벽한 것 같았지만 건륭제 사후 중국은 곧 종이호랑이로 변했고 우리도 영향을 받았다.

경제적으로도 아세안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아세안의 인구는 6억3000만명으로 세계 3위이고, GDP는 2015년 2조5000억 달러로 세계 5∼6위에 이른다. 올해 9월 말 현재 아세안에 대한 수출은 712억 달러로 전체의 16.6%를 차지한다. 이는 미국 12.1%, 유럽연합(EU) 9.6%에 비해 훨씬 많다. 아세안은 또한 1980년대 후반 우리 기업이 국제화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진출한 지역이다.

아세안의 외환위기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우리의 투자가 중국으로 대거 전환됐으나 최근 들어 중국의 투자 환경 악화로 다시 아세안이 중국의 보완 혹은 대체 지역으로 부상했다. 그 결과 2010년 이후 투자와 투자진출 기업 수에서 아세안은 중국을 넘어섰고 베트남에서는 우리 기업의 투자가 경제 구조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가 됐다.

그렇다면 아세안 중시 전략, 아세안과 더불어 잘사는 평화 공동체를 만든다는 신남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먼저 아세안의 발전을 지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아세안 시장을 이용하고 있다. 9월 말 현재 아세안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는 이미 지난해 전체의 302억 달러보다 많은 316억 달러에 이르렀다. 아세안에 무역 투자를 확대하되 균형을 추구하면서 확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아세안으로부터의 수입 기회를 더 발굴해야 한다.

더구나 아세안 선발국들은 경제적으로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 이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기술 협력, 인적자원 개발 지원, 중소·중견기업 협력 등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우리 국민들은 보다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학계, 언론, 정계, 재계를 막론하고 아세안은 싸구려 관광 지역, 값싼 노동자들이 있는 곳, 농촌의 신부들을 수출하는 곳 정도로 이해한다. 현지 진출 우리 기업들도 국내 기업문화를 그대로 전파하려고 한다. 이제 아세안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그들과 공존한다는 자세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과련, 아세안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현지 문화 존중, 노동인권 보장 등에 노력해야 한다.

박번순 고려대 경제통계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