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설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입력 2017-11-16 00:03

마태복음 25장 31∼46절

오늘 본문을 살펴봅시다. 인자가 오실 때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처럼 구분하실 것이고(마 25:31∼33), 그 오른편에 있게 될 자들에겐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십니다.

임금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했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봤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돌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언제 그런 일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임금은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는 선고가 내려집니다. 임금이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었을 때,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언제 임금이 그런 곤경에 처해 있을 때에 그것을 보고도 공양하지 않았다는 것이냐”고 반문합니다. 이럴 때 임금이 하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결론적으로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마지막 심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결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한쪽은 영원한 벌에 처하고, 다른 한쪽은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누가 인생을 후회 없이 바르게 잘 산 사람일까요. 자신만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보며 산 사람입니다. 성경은 지극히 작은 자를 향한 사랑을 언급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은 무시당하거나 멸시받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마치 임금처럼 돌봐주는 사람이 영생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 전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르완다에 다녀왔습니다. 르완다는 심각한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나라입니다. 가슴 아픈 상처가 도처에 남아 있습니다. 가난한 것은 물론이고 굶주림과 온갖 질병에 노출돼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열 살짜리 소년가장, 에릭과 우아요를 만났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하루에 몇 끼 먹느냐’고 묻는 건 적절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일주일에 몇 끼를 먹느냐’고 물어야 할 만큼 굶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찬양을 부르며 기도하며 고난의 나날을 이겨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돌봐야 하는 ‘지극히 작은 자’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조금씩만 줄여서 나눠주면 됩니다. 얼마든지 작은 자 하나를 돌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에 이르는 축복의 기회임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누면 더 풍성해집니다. 나누면 더 따뜻해집니다. 나누면 더 감사하게 됩니다. 나누면 더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김완중 용인 목양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