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골드만삭스’ 6년만에 첫걸음… 전망은 ‘미지수’

입력 2017-11-13 18:48 수정 2017-11-13 21:56
금융투자업계 숙원 사업
핵심인 발행어음 업무
한국투자증권만 허가

“신생 기업 등에 대한
투자 여력 여전히 낮을 것”

풀 과제 많아 낙관은 일러


한국형 ‘골드만삭스’를 표방한 초대형 투자은행(IB)이 첫발을 뗐다. 2011년 7월 초대형 IB 육성 계획을 발표한 지 6년 만이다. 그러나 벤처기업에 대한 ‘모험 투자’의 현실화 등 해결할 과제가 많아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13일 정례회의를 열고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 5곳을 초대형 IB로 최종 지정했다. 다만 초대형 IB의 핵심 업무인 발행어음 업무는 한국투자증권 한 곳만 허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삼성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3곳도 발행어음 업무 심사가 완료되면 올해 안이라도 증권선물위원회 안건에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대형 IB 지정은 금융투자업계의 숙원 사업이다. 2013년 정부는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금융투자회사가 기업에 대출을 할 수 있게 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투자은행·IB) 제도를 도입했다. 그래도 기업 금융이 활성화되지 않자 지난해 ‘초대형 IB 육성책’을 내놓았다. 자기자본 4조원 등 일정 요건을 갖춘 금융투자회사에 발행어음 업무, 외국환 업무 확대 등을 허용해주겠다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어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 중 50% 이상을 기업 대출, 회사채 매입 등 기업 금융에 써야 한다. 나머지 초대형 IB 4곳은 어음은 발행할 수 없지만 기업 고객을 상대로 외화환전 업무를 할 수 있다. 자기자본이 8조원 이상인 초대형 IB는 고객예탁자금을 운용하고 수익을 지급하는 종합투자계좌(IMA)와 부동산담보신탁 업무를 할 수 있지만 아직 해당되는 곳은 없다.

첫 초대형 IB가 탄생했지만 금융투자회사의 어음 발행이 당장 모험 자본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관련법이 금융투자회사의 일반·기업 대출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나영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금융투자회사가 자기자본을 배까지 조달할 수 있더라도 대출한도가 바뀌지 않으면 금융투자회사가 신생 기업 등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여전히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는 초대형 IB가 원금 손실을 피하고자 중견 이상 규모의 기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걸음마’ 단계인 국내 초대형 IB가 골드만삭스 등 거대 해외 자본과 경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본 노무라증권의 경우 아시아 투자은행 자본 규모에서 1위지만 미국, 영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져왔다”며 “예·적금이 중심인 아시아 금융과 달리 영·미권에선 일찍부터 투자은행 중심으로 발전해 풍부한 자본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안규영 기자 kyu@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