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러시아에 제공했던 경제협력 차관이 아직도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내년에 ‘대러 차관 보증채무 이행’ 명목으로 책정된 예산만 280억원에 육박한다. 러시아와 상환 협상을 하며 확정했던 금리와 현재 금리의 차이에 따른 손익을 정부 예산으로 메우면서 발생하는 지출이다. 개인이나 정부나 보증을 잘못 섰다 피해를 보기는 매한가지다.
12일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제출한 2018년 예산안 각목 명세서에 278억원의 ‘대러 차관 보증채무 이행’ 항목이 포함돼 있다. 이 예산은 정부가 운용하는 공적기금 중 하나인 공공자금관리기금(이하 공자기금)으로 편입된다. 공자기금은 러시아에서 매년 상환하는 차관을 관리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꼬박꼬박 돈을 갚는데도 별도로 예산을 책정해서 돈을 집행하는 것은 ‘보증채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태우 대통령 때인 91년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러시아에 14억7000만 달러 규모의 차관 제공에 합의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수출입은행과 시중은행 9곳이 공동으로 출자하고, 정부는 차관 금액의 90%에 대해 보증을 섰다. 이 차관은 99년까지 갚는 것을 전제로 러시아에 제공됐다.
하지만 러시아가 국내 사정을 들며 상환을 지연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이자가 늘어나면서 받아야 할 돈은 2003년에 22억4000만 달러까지 불어났다. 결국 정부는 그해 6월 러시아와 조정 협상에 나서 6억6000만 달러를 탕감하고 나머지 15억8000만 달러를 2025년까지 분할 상환하는데 합의했다. 정부는 차관을 대출해 준 은행권에 약 2조원의 빚을 대신 지급하고, 러시아에서 갚는 돈은 정부 곳간에 편입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금리’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매년 분할 상환하는 금액의 금리는 조정협상 당시의 리보(Libor·런던 금융시장에서 한 은행이 다른 은행에 자금을 빌릴 때 적용되는 이자율) 금리에 0.5% 포인트를 가산해서 결정했다. 이 금리는 고정금리로 매년 상환액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러시아에서 매년 약 7000만 달러 정도를 갚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부가 러시아를 대신해 은행에 갚아 준 약 2조원은 변동금리를 적용하는 채권을 자금원으로 한다. 금리 차이에 따라 추가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년에 예산 편성한 돈도 결국은 금리 차이 때문에 물어야 하는 손실이다. 다만 기재부 관계자는 “정부 내부거래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러 차관 보증섰다가… 정부, 내년 채무 이행금만 278억
입력 2017-11-13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