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고발권 폐지, 공정위·檢 밥그릇 싸움에 지지부진

입력 2017-11-13 05:05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사전 브리핑을 갖고 ‘공정거래 법집행체계 개선 태크스포스(TF)’의 중간논의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검찰과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공정위와 검찰이 뜻을 모아 정부안을 만들지 않으면 국회에서 그 어떤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은 구조다. 공정위가 전속고발권 폐지 등 대선 공약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공정거래 법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뒤에 숨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와 검찰, 다른 속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10년 가까이 논의를 하고 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놓지 못하는 ‘해묵은 숙제’다. 전속고발권 폐지 논란의 단초는 공정위가 제공했다. 공정위는 수십년 동안 대기업 등을 상대로 고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공소시효를 얼마 남기지 않고 고발해 검찰이 반발하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속고발권을 전면 폐지하면 형사처벌이 난무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형법과 달리 공정거래법은 같은 행위라도 경쟁제한 등 ‘경제적 폐해’를 입증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면 공정위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경찰과 검찰의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이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근거다.

하지만 논리적 쟁점보다는 담합 사건을 둘러싼 검찰과 공정위의 영역 다툼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는 담합사건의 경우 리니언시(자진신고제도)에 따른 조사가 85%를 차지하는데, 검찰이 담합을 조사해 자진신고한 기업을 고발하면 공정위의 담합조사 구조 자체가 붕괴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검찰은 공소시효를 한 달도 안 남기고 고발하는 공정위의 담합사건 처리 행태나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보더라도 검찰이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주도권을 갖고 있는 담합사건 영역을 지키려 하고, 검찰은 이를 빼앗으려 하는 셈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상조 위원장은 이달 중 문무일 검찰총장을 만나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의견을 나눌 계획이다. 다만 어느 한쪽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TF 뒤에 숨은 공정위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취임 직후부터 “경쟁법에도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경쟁법 체제 개혁을 강조했다. 이후 민간위원이 중심이 된 TF를 구성해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2일 나온 TF의 중간보고서는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TF는 전속고발권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인의 금지청구제 등 결론을 낸 사안에도 대부분 복수의 안을 제시했다.

TF를 앞세워 개혁을 추진하겠다던 공정위는 ‘TF 결론은 국회 법안 심사의 단순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TF가 내린 결론을 바탕으로 정부 입법을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전속고발권 폐지, 집단소송제, 기업분할 명령제 등 핵심 사안에 대해 주무 부처인 공정위가 입장조차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TF는 앞으로 전속고발권 등 핵심 사안을 추가로 논의해 내년 1월 최종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최종 보고서 역시 단순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본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