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회장 이만열)는 1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에서 ‘김교신과 종교개혁’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김교신(1901∼1945)은 일제강점기 당시 종교개혁자의 삶을 살다 간 신앙인으로 꼽힌다.
이 자리에선 마르틴 루터에 집중된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들과 달리 크게 언급되지 않았던 김교신, 존 밀턴, 우치무라 간조 등에 대한 연구가 발표돼 이목을 끌었다. 김교신은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성경이며 교회는 기독교를 담아내는 형식”이라고 말한 일본의 무교회주의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27∼1942년 월간 ‘성서조선’을 펴낸 기독교 사상가였고, 중학교 교편을 잡은 교육자였다.
박상익 우석대 교수는 “밀턴과 김교신은 교권주의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추구한 종교개혁적 공통 토대를 갖고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밀턴은 1640년대 초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혁명에 동참해 성공회의 권위적인 ‘주교제’를 타도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곧 청교도들이 장로교를 영국 국교로 만들려는 것을 보고 실망한 뒤 비판자로 나서게 된다.
김교신 역시 교권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신도 사이의 종파심”이라며 “같은 복음주의인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등이 서로 공격과 수비의 전략에 몰두하는 것은 무슨 심사인가”라고 성서조선 1932년 11월호에 썼다. 박 교수는 “김교신과 밀턴은 다른 시대, 다른 상황을 살았지만 종교개혁자로서 살아간 신앙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훈경(안산한길교회) 목사는 김교신이 성서조선에 기고한 주기도문 연구와 성경주해가 루터의 주기도문 해설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김 목사는 “김교신은 성서조선에 연재한 성경해석을 통해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대변했다”면서 “조선인들이 자주적인 신앙을 갖도록 힘썼다”고 평가했다.
양현혜 이화여대 교수는 김교신의 은사인 우치무라가 지적한 루터의 한계를 설명했다. 우치무라는 루터가 성직제도와 세례 성찬을 유지하면서 당시 가톨릭교회의 제도로부터 완전히 단절하지 못했다고 봤다. 세례와 성찬을 구원의 필수 요소로 두면서 이를 성직자만 집행할 수 있다고 보는 건 여전히 성직중심주의의 잔재를 지우지 못한 것이었다. 양 교수는 “우치무라는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별하는 교회의 계급주의에 반대했다”면서 “성찬과 세례 같은 의식이 영혼을 구원하지 않는다고 봤다”고 전했다.
글·사진=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김교신은 교권주의 배격한 종교개혁자”
입력 2017-11-13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