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흔들린다” 朴정부 국정원장들의 ‘자가당착’

입력 2017-11-10 18:54 수정 2017-11-10 21:38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빼내 청와대에 뇌물로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병호(사진) 전 국정원장이 검찰에 불려나오며 “국정원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10일 오전 9시16분쯤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안보 정세가 나날이 위중해지고 있다”며 “국정원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 오히려 국정원이 큰 상처를 받고 흔들린다”고 강변했다. “크게 걱정된다” “위태로운 상황”이라며 “국민적 성원”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기자들이 “국정원 특활비를 청와대에 상납했나” “이런 국정원을 국민이 지지할 수 있나”고 질문했지만 이 전 원장은 입을 닫고 조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전직 국정원장의 일그러진 우국충정은 박근혜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남재준 전 원장도 같았다. 지난 8일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불려온 그는 “국정원 직원은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최고의 전사들”이라고 말했다. 육군 참모총장 출신인 남 전 원장은 2013년 3월 취임식에서도 “나는 전사가 될 각오가 돼 있다”며 ‘전사론’을 내세웠다.

이들은 국정원 본연의 임무와는 거리가 먼 돈 문제 때문에 피의자가 됐다. 남 전 원장은 2013년 5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매달 5000만원을 상납했다. 2013년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재판도 방해한 혐의가 있다.

이 전 원장은 지난 정부 마지막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매달 1억원을 청와대에 올려 보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지난해 4·13 총선에 앞서 실시한 불법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상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이 전 원장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상납을 요구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13일엔 남 전 원장의 후임인 이병기 전 원장을 소환조사한다. 이 전 원장은 청와대 상납금을 월 1억원으로 인상했다. 2015년 2월 국정원장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영전했다. 닷새 동안 박근혜정부 국정원장 3명이 검찰에 불려나온 일은 전례가 없다.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 조사가 다음 수순이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