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1200병·와인 200병
맥주 60상자·다이아 2개…
北서기관 “도둑 맞아” 신고
주류 금지된 이슬람국가서
신분 이용해 술 밀수한 듯
용의자는 현지 경찰 3명
지난달 파키스탄을 떠들썩하게 했던 북한 외교관 자택 대규모 주류 도난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현지 언론은 북한이 무역 제재를 받는 와중에 외화벌이를 위해 수년간 주류 밀수에 관여해 왔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파키스탄에 주류를 돌려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4일 북한 현기영 1등 서기관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온 뒤였다.
현 서기관은 집 안의 물품이 전날 대거 도난당한 것을 발견하고 인근 코하르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했다. CCTV 분석 결과 범인은 정복 차림의 경찰관 3명이었다.
현 서기관이 신고한 도난 물품은 조니워커 위스키 1200병과 프랑스산 와인 200병, 맥주 60상자와 데킬라 수십병, 다이아몬드 2개와 현금 3000달러(335만원)였다. 이 중 조니워커 위스키 1200병만 따져도 파키스탄 암시장에서 9만6000달러(1억700만원)가 넘는다. 한 경찰관은 “당시 현 서기관이 몹시 초조해했고 앞일을 걱정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북한 대사관은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4차례에 걸쳐 아랍에미리트(UAE) 업체를 통해 프랑스산 보르도 와인 1만542병, 하이네켄과 칼스버그 맥주 1만7322캔, 샴페인 646병을 구매했다. 총 7만2867달러(8150만원)어치다.
이미 경찰은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주류 밀매에 관여했다고 결론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라마바드 경찰 고위 관계자는 “(현 서기관을 포함한) 북한 사람들이 주류 밀매에 관여했다”고 말했다. 용의자로 지목돼 도주 중인 경관 말릭 아시프도 로이터에 “북한 사람들이 주류 밀매에 관여한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오랜 시간 일을 해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공식적으로 주류 구입이 불가능하다. 단 일정 직위 이상 외교관들에게는 최대 주류 120ℓ와 와인 18ℓ, 맥주 240ℓ를 구입하는 게 허용돼 있다.
현재 북한은 파키스탄에 외교관 12∼14명을 파견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파키스탄 무역이 2016년 8월 공식 중단된 것을 감안하면 북한 측이 외교 접대가 아닌 ‘엉뚱한 목적’으로 술을 사들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각에선 파키스탄 정부가 북한과 긴밀했던 예전 관계 때문에 그동안 밀매를 눈감아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핵무기 개발로 유명한 파키스탄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은 2004년에 핵 제조기술을 북한에 팔았다고 밝힌 바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파키스탄 北 외교관 본업은 주류 밀수?
입력 2017-11-11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