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순방 성적표’… 럭비공 이미지 불식했지만, 역시 장사꾼

입력 2017-11-11 05:03
사진=AP뉴시스

대북 군사행동 발언도
김정은 조롱도 안해
당초 우려와 달리 깔끔

한국 국회 연설도 호평
워싱턴 정가 잔뜩 고무

수백조원 세일즈외교
시기 불분명·MOU 수준
언론들은 ‘인색한 평가’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의 한국, 중국, 일본 순방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고, 국제공조를 다지는 성과를 낳고 마무리됐다. 그러나 추가 대북 제재를 합의하거나,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극적인 돌파구는 마련하지 못했다. 미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로 중국의 양보를 받아낸 게 없다”며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다만 워싱턴 외교가는 아시아 순방이 당초 우려와 달리 매끄럽게 진행됐다며 안도하고 있다. 특히 미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이 한국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자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동북아 3개국 순방에서 특이한 점은 선제타격 등 대북 군사행동을 시사하거나,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조롱하는 발언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 파괴하겠다’고 공언하고, 김정은을 ‘로켓맨’으로 비하한 뒤 ‘폭풍 전 고요’ 등 전쟁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낸 것과 사뭇 달라진 태도였다. 한국 국회 연설을 통해 북한을 ‘감옥국가’라고 표현했으나 전체적으로는 절제되고 조율된 원고에 충실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실천하고 협상 테이블에 나오면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며 외교적 해법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행보를 보인 배경에는 군사행동을 반대하는 한국을 의식한 것일 뿐 아니라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었다. 대북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은 제재와 대화의 병행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순방 결과에 대해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평가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 맨스필드재단의 프랭크 자누지 대표는 9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하고, 외교적 해법을 강조한 것은 성과”라고 말했다. 자누지 대표는 그러나 “이번 순방을 통해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건 한계”라며 점수를 매기자면 C-(70점)”라고 말했다. 세밀한 관여(engagement) 계획이 없으면 제재만으로는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국 국회 연설은 미국에서도 화제였다. 미 국무부는 국회 연설이 한국민들에게 어필하면서 관련 서적 판매가 늘어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이미지가 달라지자 희색이 만면했다. 워싱턴DC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미 국무부 관계자들로부터 “(대통령이 한국을 기쁘게 해줬으니)축하한다”는 인사말을 받기 바빴다.

특히 미국 내 인권단체들이 국회 연설을 높이 평가했다. 북한인권위원회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정권의 본질과 전략적 목표, 끔찍한 인권 상황을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잘 드러냈다”고 극찬했다.

세일즈 외교에 대해선 평가가 갈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 284조원, 일본서 168조원, 한국에서 84조원의 각종 계약을 체결하면서 세일즈맨(장사꾼)과 프레지던트(대통령)의 조어인 ‘세일즈던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사업 수주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대부분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 수준의 발표이거나 이행 시기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CNN방송은 보잉사의 370억 달러(약 41조원)어치 계약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 방미 때 약속한 게 포함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기업가 출신 대통령의 사업수완을 돋보이게 하려고 실적을 부풀린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