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경림] 인권의 거울

입력 2017-11-10 17:51

70년 유엔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제도를 꼽으라면 인권의 보편적정례검토(UPR, Universal Periodic Review)라 하겠다. 4년 반 주기로 회원국들의 인권상황을 심사하는 제도다. 인권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예외 없이 심사를 받아야 한다. 모든 회원국은 심사에서 평등하다. 일례로 심각한 인권위반국 북한도 미국의 인권심사에 참여해 비판과 권고를 할 수 있다. 2006년 탄생한 이 제도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2012년 팔레스타인 점령문제로 비판받던 이스라엘은 UPR 수검 거부를 선언했다. 한 나라라도 참여를 거부하면 UPR은 보편성을 잃게 되고, 추가적인 수검 거부국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설득했다. 결국 설득은 성공했고, UPR은 차질 없이 계속될 수 있었다.

지난 9일 한국은 2008년과 2012년에 이어 세 번째 UPR 심사를 받았다. 우리에게 권고를 제시한 국가는 모두 99개로 1, 2차 수검 당시의 33개와 65개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 이는 우리 인권상황이 악화됐다기보다는 UPR 참여가 확대되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타국의 인권문제 거론을 꺼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거부감이 많이 누그러져 비교적 자유롭게 서로의 인권문제를 지적한다.

회원국들의 권고는 변화하는 시대상을 잘 말해준다. 이번 심사에서는 사형제,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문제처럼 기존에 지적되었던 사안 외에도 성소수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 보장, 다문화 가정 폭력문제, 외국인 불법체류자 자녀의 출생등록 문제, 노인층 권익 문제, 높은 자살률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사회가 변할수록 인권문제 역시 변하는 것이다.

회원국들이 우리의 인권상황을 부정적으로만 거론한 것은 아니다. 과거 UPR 심사 시 제시되었던 권고이행실적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 평가했으며,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의료보험의 적용확대 등 새 정부의 복지확대정책을 평가하는 국가들도 있었다. 또한 지난겨울 촛불집회 이후 진행된 평화적, 민주적 정권교체를 칭찬하는 국가도 있었다.

3시간 반에 걸친 3차 심사는 끝났지만, 이는 새로운 시작이다. 정부는 99개국이 제시한 권고사항을 검토하고 그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시민사회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도 참여한다. 이는 마치 인권개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쌓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어렵고 복잡한 인권 이슈일수록 다른 나라의 경험과 지혜를 참고하여 장기적 안목으로 해법을 모색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한국은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민주화와 인권증진 경험이 있고, 국제사회의 기대 역시 크다. 특히 국제인권논의에 있어 한국의 역할과 기여에 대한 평가도 높은데, 이는 이번 UPR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동구권 몰락과 자유민주주의 승리에 고무된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지만,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인권은 위축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이번 UPR 수검에서 한국은 새 정부의 인권증진 의지를 국제사회에 천명했다.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권고에 대해 우리 사회가 건강한 토론을 갖고 신뢰를 주는 인권 선진국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최경림 주제네바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