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사랑하는 관계 맞다”
40대 기획사 대표 주장 인정
변협 회장 “심증은 있으나
증거없는 한국판 O. J심슨 사건”
여성단체 비난… 논란 소지 남겨
연예기획사 대표 조모(48)씨는 2011년 8월 아들이 입원한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A양(당시 15세)을 우연히 만나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휴대폰 번호를 얻어냈다. 조씨는 “아는 유명 연예인이 많다. 소개해주겠다”고 A양과 친해진 뒤 빈 병실과 차량, 자택 등에서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조씨는 아내가 있는 상태였다.
조씨는 이듬해 3월 임신 사실을 알리는 A양에게 크게 화를 내며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다. A양이 커터로 손등을 그은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게시하자 조씨는 A양에게 다시 연락했다. 그는 “집에는 이야기하지 말고 가출하라”며 A양이 부모에게 남길 허위 편지 문구까지 전달했다.
A양이 2012년 9월 출산 직후 경찰에 성폭행 신고를 하면서 조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씨는 27세 어린 A양과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강변했다. 정작 A양이 가출했을 때에도 거리에서 다른 여성에게 접근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던 조씨였다. 조씨는 오히려 “가출에 대한 책임은 A양 부모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1심은 징역 12년, 2심은 징역 9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014년 11월 대법원은 “A양은 조씨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이후 그 감정이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며 유죄 판결을 깼다. A양이 구속된 조씨를 매일같이 접견한 점, 접견민원서신에 ‘사랑한다. 많이 보고 싶다. 함께 살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점, 서신 작성에 색색의 펜을 쓰고 ‘하트’ 표시를 그린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미성년자 등 취약한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뒤 가해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며 대법원을 비난했다. 성관계에 동의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기준인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하는 형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하지만 조씨의 4번째 재판이었던 파기환송심 결과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대로 무죄였다. A양이 “보복과 왕따, 어머니의 충격이 걱정됐다”며 조씨와의 관계를 감췄던 이유를 밝혔지만 재판부는 “계속 만난 사실을 쉽게 설명할 수 없다”고 봤다. 검찰은 재상고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9일 조씨의 재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40대 남성이 연예인 데뷔를 운운하며 여중생을 임신·출산케 한 사건은 다섯 차례 법원의 판단 끝에 ‘사랑’으로 사법적 결론이 났다. 대한변호사협회 김현 회장은 “유죄 심증은 있어도 결정적 증거가 없었던 ‘OJ 심슨 사건’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여중생 임신 사건’ 무죄 확정에 시끌
입력 2017-11-09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