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입력 2017-11-11 00:00

마태복음 26장 51∼53절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이래 인류역사에는 항상 폭력성이 내재돼 있습니다. 적당한 여건이 주어지면 언제나 폭력이 개인적, 혹은 집단적으로 표출돼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인간의 폭력성이 어떻게 삶을 위협하고 있는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분단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지나온 우리는 인간의 근원적 죄악을 보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칼과 망치로 무장한 큰 무리와 마주하셨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폭력배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를 지배하던 정치·종교 기득권 세력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와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폭력세력 앞에서 예수님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칼을 들어 그들과 싸우거나 타협하고 굴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3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폭력을 극복하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인간의 증오와 악을 극복하는 길입니다. 칼을 들어 대제사장 종의 귀를 내리친 베드로의 행동은 주님과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정당한 폭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마저 거절하시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길을 통해 주님은 창조 이후 계속된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리셨습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고 우리 모두를 평화와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주님의 길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혐오감과 증오감, 폭력성에 절대 무릎을 꿇으면 안 됩니다. 대신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주님은 세상의 역사 위에 항상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도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셨기에 두려움 없이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의 전체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편 가르기를 멈춰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폭력성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혼란한 이 시대에서도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생명과 구원의 하나님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분께 우리의 미래를 맡기며 새로운 평화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전쟁의 위기 앞에서 두려움과 무력감으로 고통받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지만 우리에게는 이 현실을 넘어서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화의 길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남과 북이 증오와 저주를 걷어내고 서로 부둥켜안고 하나의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룩한 꿈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심어주신 거룩한 꿈입니다.

민족의 운명에 큰 위기를 맞은 오늘의 한국교회는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새로운 창조적 평화의 길, 통일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이 거룩한 꿈이 이뤄지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아멘.

박경조 주교(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