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노용택] 관행 깨는 게 개혁이다

입력 2017-11-09 17:38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예산정국을 관통하는 정쟁의 키워드가 있다. ‘관행’이다. 관행을 앞세운 여러 행위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야 간 갈등을 일으키는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관행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오래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이다. 예전부터 해 오는 대로 했는데 왜 정치권에서는 문제가 될까.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6일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청와대 국정감사에 불출석했다. 그는 불출석 사유서에 ‘비서실장이 당일 공석인 상황에서 국정 현안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업무적 특성을 고려해 부득이 위원회에 참석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적었다. 야당은 국감에서 조 수석에게 인사검증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해 공격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조 수석의 출석 거부는 사실상 ‘국회에 나가서 인사 관련 야당의 질타를 받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굳이 지난 9년간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한 적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시간을 약 1년 전쯤으로 되돌려보면, 지난해 10월 21일 청와대 국정감사에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도 유사한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불참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 결과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등 ‘국정 현안’을 우 전 수석에게 따져 물을 기회가 사라졌다.

두 사안을 병렬적으로 놓고 비교하기에는 경중이 무척 다르다. 그래도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출범한 정부의 고위 공직자가 과거 자신들이 비판했던 관행을 답습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새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나도록 조각이 마무리되지 않고, 부실한 사전검증으로 장·차관 후보자들 중 다수의 탈락자가 생긴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기도 하다.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등 업무를 수행하는 조 수석이 국회에 나와서 얘기해주면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기회는 사라졌고, 1년 뒤 국감에서 다시 그 기회가 올지 확신할 수 없다. 여당 고위 관계자는 “조 수석이 국회에 출석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다만 어떤 민정수석도 장·차관 인선이나 인사검증 문제로 국회에 출석한 전례는 없다는 게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전례가 없다고 해서 관행을 그대로 유지해야만 하나. 다시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라는 게 있다. 정보 및 사건수사,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뜻한다.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 경찰 등 20여개 정부부처에 관련 예산이 편성되는데, 그 규모가 2012년 이후 매년 8000억원이 넘는다. 특활비의 가장 큰 문제는 감시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기밀보장을 이유로 영수증을 생략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어 사용처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국회 결산을 통해서도 사용내역이 파악되지 않는다. 수년간 특활비 사용처 논란이 지속됐고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제도개선의 필요성도 인정 돼 왔다. 그러나 ‘눈먼 돈’처럼 편하게 특활비를 써오던 관행이 유지됐고, 매년 비슷한 문제가 반복해서 터져나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년 전 국회 운영위원장 시절 매월 특활비 4000만∼5000만원을 쓰고도 ‘남은 돈’을 ‘생활비’로 썼다고 했다. 신계륜 전 의원도 특활비를 자녀 유학자금으로 썼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문제가 터지면 정치권은 제도개선에 나서기보다 “너희는 깨끗하냐”며 서로를 탓하기 바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으로부터 40억원대 특수활동비를 상납 받아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야권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특활비 유용 사건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쟁점화를 시도하는 데만 열을 올린다. 옛 것을 따르는 관행이 모두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저런 비판을 받는 관행을 깨부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게 개혁이다.

노용택 정치부 차장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