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1박2일간 성조기를 흔들었나

입력 2017-11-09 05: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환영하는 이들이 8일 국회 앞에서 성조기와 태극기,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김지방 기자

대체로 극우단체 구성원
“제일 중요한 안보 위해선
한미동맹 강화가 절실”

탄핵 후 ‘위기감’ 한몫 분석
친박집회 연장 관측도


서울 도심이 미세먼지로 가득했던 8일 국립서울현충원 인근에는 오전부터 성조기 물결이 가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새벽부터 왔다는 박모(71)씨는 “미국이 도와줘서 우리나라가 이만큼 된 건데, 젊은 세대는 모른다”며 “혹시나 (트럼프 대통령이) 실망할까 걱정돼 나왔다”고 했다. 박씨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채 대형 성조기를 들고 거리를 누볐다.

‘성조기 부대’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위해 여의도를 찾자 이들은 성조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했다. 의사당대로를 종횡하던 이들은 트럼프 반대 집회 현장에 난입해 참가자들의 멱살을 잡고 ‘빨갱이’라며 욕설을 날렸다. 충돌을 우려한 경찰이 미리 차벽을 설치했지만 “환영 집회인데 왜 막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1박2일 방한 내내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박씨처럼 성조기를 손에 든 인파가 북새통을 이뤘다. 8일 환영 집회에는 여의도 8000여명, 현충원 1900여명(경찰추산)이 모였다.

이들은 왜 성조기를 들었을까.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은 6·25 전쟁 등 특수한 경험 때문에 국익을 위해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단 인식이 있다”며 “‘보수=친미’란 공식이 성립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환영단은 대한애국당,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등 ‘극보수’ 단체 구성원들이 대부분이다. 한 참가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차량이 빠져나갈 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장년층·노인층은 불안한 정세 속에서 자수성가를 이뤄냈지만 이젠 소득과 재산이 위태롭고, 존중보단 멸시를 받고 있다”며 “진보·보수와 상관없이 과거의 기억, 즉 미국의 원조에 기대려는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탄핵 이후 보수의 ‘위기감’이 한몫했단 분석도 나온다. 성조기 부대 구호 중에는 “문재인정권은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 것”이란 내용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친박(친박근혜) 집회의 연장선상으로 보기도 했다. 현충원 집회에 참가한 최모(63·여)씨는 “박근혜정부가 안보 측면에서 굉장히 잘하지 않았나. 지금 적폐청산을 한다지만 결국 중요한 건 안보”라고 했다. 배규한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탄핵 이후 보수 세력의 존재감이 확실히 줄었다. 이번 방한을 계기로 상황을 전복하고자 하는 염원도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글=이재연 이형민 기자 jaylee@kmib.co.kr, 사진=김지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