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신의 고매한 가치에 주목한 ‘정신주의’ 사조를 이끈 조정권(사진) 시인이 8일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간경화와 뇌출혈로 수년간 투병해온 고인은 최근 들어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이날 새벽 5시30분 숨을 거뒀다.
조 시인은 독보적인 시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 출신인 그는 1969년 시인 박목월 구상 김요섭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1977) ‘허심송’(1985) ‘하늘이불’(1987) ‘산정묘지’(1991) ‘신성한 숲’(1994) ‘고요로의 초대’(2011) ‘시냇달’(2014) 등이 있다.
고인은 서정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정신주의 사조를 선도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목월문학상 질마재문학상 한국서정시문학상을 받았다. 대표작인 시집 ‘산정묘지’는 김수영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여기에 실린 ‘산정묘지 1’이라는 시만 읽어도 고인의 문학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결빙을 노래한다….’
조 시인은 문학 외에 건축 미술 무용 음악 등 여타 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주요 보직을 맡아 한국의 문화예술 발전에도 기여했다. 83년부터 진흥원에서 문학·미술부장 국제사업부장 기획조정부장을 역임했다.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과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방송작가 주경희씨와 두 딸이 있다. 장례는 한국시인협회 시인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10일 오전 8시(02-2072-2011).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삶의 향기와 자취] ‘정신주의’ 사조 이끈 조정권 시인 별세
입력 2017-11-08 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