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신곡 초연 뒤엔 늘 우울… 저거밖에 안 되나 싶어서요”

입력 2017-11-08 19:20 수정 2017-11-10 19:01

‘작곡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 수상 후 아널드 쇤베르크상, 피에르 대공재단 음악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달엔 시벨리우스 음악상을 수상한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56·사진). 독일에서 최근 입국한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작곡가인 그를 6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향 사무실에서 만났다.

시벨리우스 음악상은 상금이 약 2억원이다. “대부분 작곡가들이 작곡에만 전념할 기회를 갖기 어려운 걸 생각하면 저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인 것 같아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수상으로) 제가 음악에 전념할 수 있으니까.”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그는 자신이 직접 기획한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 공연을 지도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요즘 유럽의 대형 오케스트라도 대중성을 위해 음악적 타협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해요. 서울시향이 연중 내놓는 레퍼토리를 보면 다양하고 도전적이에요. 자랑스러워요.” 서울시향이 2006년부터 진행하는 ‘아르스 노바’는 동시대 음악 경향을 소개하는 현대음악 시리즈로 호평 받고 있다.

클래식의 본고장에서 각광받는 그가 서울시향과 인연을 10년 넘게 이어오는 이유는 뭘까. “한국인들이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으려면 다른 사람보다 10배는 더 잘해야 돼요. 한국 클래식에 대한 서구인들의 평가가 아직 낮기 때문이죠. 사명감 같은 거창한 건 아니지만 한국 클래식의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그는 정명훈 전 예술감독과 박현정 전 대표를 중심으로 일어난 서울시향 내분 때문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시향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 서울시향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단결’이라고 생각해요. 구성원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는 것. 저는 제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요.” 서울시향은 지난 3일에 이어 8일 아르스 노바 무대에서 이규림의 앙상블 신작 등을 세계 초연했다. 진은숙의 신작 ‘코로스 코르돈’(현의 춤)은 지난 3일 베를린필이 베를린 현지에서 초연했다.

“항상 초연을 하고 나면 우울해져요. 긴장이 풀리는 탓도 있지만 ‘내가 한 게 저거밖에 안 되나’ 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이번 초연 때 제 곡 앞뒤로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와 라흐마니노프 3번 교향곡이 있었는데 (제 곡이) 흠잡을 데 없는 두 곡 사이에 낀 맛없는 샌드위치 속처럼 느껴지더군요.”

대가의 기준은 달랐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제 곡을 비판적으로 얘기해도 아무도 저보다 더 정직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전 제 기준이 높고, 높아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목회자의 딸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교회에서 음악을 접했고 6세 무렵부터 찬송 반주를 했다.

“저는 계속 음악 속에 살았어요. 예술성이란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거 같아요. 연주자도, 오케스트라도.” 그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로 들렸다. 그는 내한하는 베를린필의 20일 공연을 본 뒤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다.

글=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