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민낯… 청년 꿈은 공무원, 기부 무관심, 거센 복지요구

입력 2017-11-08 05:00



피가 돌지 않는 생체조직은 괴사(壞死)한다. 활기를 잃은 사회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의 암울한 단면이 청년층 인식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구는 있지만, 모험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중·고등학생의 꿈은 공무원, 대학생의 꿈은 공기업 직원이다. 더불어 산다는 공동체 의식도 흐려졌다.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기부를 안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복지 요구는 거세다.

■도전 대신 안주… 직업선택 기준 '돈과 안정'

한국사회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만 13∼29세 청년층의 꿈은 뭘까.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공무원, 공기업 직원이 꼽혔다. 벤처기업에 들어가거나 창업을 꿈꾸는 이는 드물었다. 수입과 적성을 직업 선택의 기준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안정을 추구할 뿐이다.

바늘구멍을 뚫고 취업을 해도 10명 중 6명은 실직이나 이직 불안감에 시달린다. 불안이 희망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은 전국 2만5704가구의 13세 이상 가구원 3만9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수입(39.1%)이었다고 7일 밝혔다. 이어 안정성(27.1%), 적성·흥미(17.1%) 순이었다. 다만 중·고등학생은 수입보다 적성과 흥미를 우선순위에 뒀다. 통계청은 매년 사회조사를 하면서 5개 분야를 선정하는데 올해는 복지, 사회참여, 문화·여가, 소득·소비, 노동(직업 인식) 분야가 대상이었다.

원하는 직장과 직업 인식은 큰 괴리를 보였다. 청년층이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첫 손에 꼽은 곳은 국가기관(25.4%)이다. 2위는 공기업(19.9%)이다. 적성과 흥미를 중요 기준으로 내세운 중·고등학생의 경우 정작 일하고 싶은 곳으로 국가기관을 지목한 답변이 가장 많았다. 대학교 이상 재학자는 국가기관(23.7%)보다 공기업(24.9%)을 더 선호했다. 수입은 공무원보다 많으면서, 직업의 안정성은 공무원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회 대비 위험이 큰 벤처기업(2.9%)이나 중소기업(3.7%)을 바라는 청년들은 적었다. 중·고등학생과 대학교 이상 재학자 모두 창업을 선호하는 비율은 7∼8%대에 불과했다.

또한 취업에 성공해도 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을 잃거나 이직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응답한 취업자가 60.4%에 달했다. 남성이 느끼는 불안감이 여성보다 더 컸다. 연령별로는 30∼40대의 불안감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일이 가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은 옅어지고 있다. '일이 우선'이라고 응답한 이는 조사 대상 취업자의 43.1%에 머물렀다. 2년 전 조사 때보다 10.6% 포인트 줄었다. 여성 취업의 장애물로는 육아 부담이 1위를 차지했다. 30대는 가장 많이 늘려야 할 공공시설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꼽았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삭막해진 인심… 확 줄어든 기부, 원인은 '무관심'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 2년 전과 비교해 현재 소득에 만족하는 이들이 늘었다. 경제적 여력이 있어서 자식과 떨어져 산다는 노인도 늘었다.

하지만 기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기부를 등한시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취약계층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옅어진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진짜 옛말이 됐다.

통계청이 7일 발표한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인구 중 82.1%는 소득이 있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2년 전 조사 결과(78.5%)보다 3.6% 포인트 늘었다. 19세 이상 응답자 3만4837명을 표본 조사한 결과다.

소득이 있는 사람 가운데 현재 소득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중은 13.3%로 2년 전보다 1.9% 포인트 증가했다. 반대로 소득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은 46.3%에서 46.0%로 감소했다. 자신의 현재 소득 수준이 보통이라고 답한 사람은 40.7%를 차지했다. 소득 만족도가 늘어난 만큼 소비생활 만족도 역시 올랐다. 여가나 취미생활 등 전반적 소비에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15.4%였다. 2년 전보다 1.5% 포인트 늘었다.

자녀와 떨어져 살고 있는 60세 이상 노년층의 상황도 변했다. 독립적으로 생활이 가능해서 떨어져 산다는 이가 31.4%나 됐다. 떨어져 사는 게 편해서라는 대답(29.4%)보다 많았다. 2년 전만 해도 떨어져 사는 게 편하다는 이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소득 상황은 나아졌지만 '이웃과 나눔'은 자취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조사 대상 3만9000명 중 지난 1년간 기부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26.7%에 불과했다. 2011년 조사 때엔 36.4%가 기부 경험이 있다고 답했었다. 6년 사이 10% 포인트 가까이 줄었다.

더 심각한 점은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에 있다. 돈이 없어서라는 답은 2년 전 조사 때보다 줄어든 반면 관심이 없다는 응답은 대폭 늘었다.

나눔은 외면하면서 복지 요구는 높다. 보건의료 서비스 등 복지 제도를 고려한 전반적 생활여건을 묻는 질문에 '변화 없음' 또는 '나빠졌다'는 응답이 58.8%나 됐다. 연령별로 30∼39세에서 나빠졌다는 대답이 16.6%로 가장 많았다.

세종=신준섭 기자

■이기적 사건 증가… 교통사고 후 블랙박스 떼내

보복운전으로 피해자에게 큰 상해를 입힌 뒤 피해자가 후송되자 보복운전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 차량의 블랙박스까지 떼어내 버린 운전자가 검거됐다. 병역을 피하기 위해 몇 년간 조현병 환자로 살았던 남성도 구속됐다. 이기적이고도 삭막한 세태의 단면이다.

경북 칠곡경찰서는 보복운전으로 상대 차량을 전도시킨 뒤 증거인멸을 시도한 A씨(56)에 대해 7일 특수상해와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8월 25일 중앙고속도로 하행선 가산터널 인근을 운행하던 중 뒤따라오던 B씨의 차량이 자신의 외제차를 2∼3회에 걸쳐 추월하려하자 이에 격분해 터널을 통과한 직후 급제동했다.

뒤따르다 급제동에 놀란 B씨는 갓길로 방향을 틀었으나 A씨가 같은 방향으로 차량을 진행시켰고 결국 B씨 차량은 A씨 차량을 피하려다 콘크리트 옹벽과 충돌한 뒤 전도됐다. 중상을 입은 B씨가 병원으로 후송되자 주변에 있던 A씨는 보복운전을 숨기기 위해 사고 장면이 녹화된 B씨의 차량 블랙박스를 떼어내 인근 풀숲에 버린 후 오히려 추돌사고를 당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보복운전을 당했다는 B씨의 진술과 두 차량의 충돌부분을 수상하게 여겨 치밀한 수사 끝에 보복운전임을 밝혀냈다. A씨는 현재까지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경찰은 A씨가 버린 블랙박스를 수차례 수색 끝에 회수해 분석한 결과, 범죄가 소명된다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속도로의 보복운전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해 차량의 블랙박스를 손괴하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A씨를 구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부산에선 병역을 피하기 위해 치밀하게 연기했던 3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이날 허위진단서로 병역을 면제받은 혐의(병역법 위반)로 이모(31)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2005년 11월 신체등급 1급 현역입영대상 판정을 받았으나 입영을 계속 미뤘다. 그러다 각종 정보를 입수해 조현병 환자를 흉내 내며 2년여 치료까지 받은 끝에 2011년 10월 병원 정신과에서 병사용 조현병 진단서를 받았고, 2012년 4월 5급 처분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병원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았을 당시 이씨의 지능지수는 53이었으나 병역 기피 후 그는 수입차 영업사원이나 소규모 언론사 기자 등으로 일하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했다. 이씨의 범행은 조현병 진단으로 취소된 운전면허를 다시 취득하려고 병원에서 재검진 받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씨의 지능지수가 114로 나오자 수상하게 여긴 병원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칠곡·부산=김재산 윤봉학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