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살아난 베를루스코니

입력 2017-11-08 05:02
사진=위키피디아

시칠리아 지방선거 승리 이끌어
우파연합 후보 당선에 큰 공로
공직금지 풀리면 총리 도전할 듯


정치적 퇴물인 줄 알았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1·사진) 전 이탈리아 총리가 내년 5월 총선의 전초전 격인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며 불사조처럼 정치무대로 돌아왔다.

지난 5일(현지시간) 치러진 남부 시칠리아 지방선거에서 우파연합의 넬로 무수메치 후보가 제1야당 오성운동의 잔카를로 칸첼레리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집권 민주당의 파브리치오 미카리 후보는 3위로 밀렸다.

이번 선거는 총선 전 마지막 선거인 데다 시칠리아섬이 이탈리아의 대표 골칫거리인 이민·실업·경기부진 문제를 다 안고 있는 곳이어서 총선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선거로 주목받았다. 여기서 이기는 정당이 총선의 기선을 잡게 되는 셈이다.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외신들이 일제히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사람은 당선자가 아니라 베를루스코니였다. 우파 3개 정당의 연합을 성사시키고 열성적인 유세로 선거 승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중도우파 정당 ‘전진 이탈리아’의 대표인 베를루스코니는 극우 성향의 북부동맹, 이탈리아형제당과 손잡고 우파연합을 형성했다. 빚이 많고 성장이 정체된 시칠리아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약속하고 ‘반(反)이민’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쳐 표심을 얻었다. 다음 총선의 핵심 어젠다를 미리 선점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베를루스코니는 억만장자 미디어 재벌이자 총리를 네 차례나 지낸 거물 정치인이다. 그러나 2013년 탈세로 유죄 판결을 받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당시 상원의원직을 잃었고 공직 진출도 금지됐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 행보를 재개한 그는 공직 진출 금지가 부당하다며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올 연말 그의 희망에 부합하는 판결이 나온다면 내년 총선에서 다섯 번째 총리직에 도전할 수도 있다.

판결 결과 총리 후보로 나설 수 없게 되더라도 막후 실력자로서 우파연합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단일 정당으로는 오성운동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앞서지만 이번처럼 우파 진영이 뭉치면 총선에서도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