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전성인] 금융실명법 섣부른 개정 안돼

입력 2017-11-07 17:42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금융실명법에 관한 입장을 정리해 발표했다. 대략적인 내용은 “객관적인 정황, 예를 들어 검찰 수사, 국세청 조사, 금감원 검사 등에 의해 차명계좌임이 밝혀진 경우 이를 금융실명법 제5조에 따른 비실명재산으로 봐서 90%의 세율로 소득세 차등 과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어느 나라 말인가.

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명계좌’라는 말과 ‘비실명재산’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한다. 차명계좌란 자금의 실소유주와 금융계좌의 명의인이 일치하지 않는 계좌를 말한다. 갑의 돈을 짐짓 을의 돈인 것처럼 해서 을의 이름으로 금융계좌를 만든 것이다. 비실명재산이란 금융실명법을 위배해 실제 명의로 거래하지 않은 재산을 말한다. 비실명재산은 위법한 재산이므로 금융실명법이 정한 바에 따라 이자 및 배당 소득에 대해 고율의 소득세가 분리 과세된다.

문제는 언제 차명계좌가 비실명재산이 돼 제재의 대상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달 16일 국정감사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자금의 실제 소유주가 누구이건 이를 불문하고 계좌의 명의자와 그를 확인하는 증표(주민등록증, 사업자등록증 등)가 일치하는지를 매뉴얼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확인하기만 했다면 그것은 비실명재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그런 절차를 거쳤더라도 금융기관이 어떤 경로로 명의인이 계좌 재산의 실제 소유주가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면, 즉 당해 계좌가 ‘타인의 실명’으로 개설된 계좌라면 비실명재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관건은 금융기관이 ‘차명임을 알게 된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금융위의 보도참고자료가 말하는 것은 박 의원 말이 맞는다는 것이다. 즉 16일에 최종구 위원장이 ‘정확하지 않은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보도참고자료에서 사람들이 자칫 놓치기 쉬운 더 중요한 점은 이런 합의문의 내용이 전혀 새로운 유권해석이 아니고 법령의 취지와 대법원 판례, 그리고 기존 유권해석의 근본 취지를 정확하게 정리해 해석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왜 들어갔을까. 그 이유는 국세청이 뒷걸음질칠지도 모르는 퇴로를 봉쇄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어쩌면 국세청은 이것이 ‘새로운 유권해석’이라고 결판날 경우 새로운 유권해석을 과거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례에 적용하는 것은 소급적용이라 불가능하다면서 과세를 거부할 수도 있다. 기존 유권해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이런 가능성을 깔끔하게 차단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동안 삼성과의 사건에서 이런 논리적 장난은 우리 사회에서 숱하게 있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2005년의 금산법 파동이었다. 당시 많은 재벌계열 생보사들이 보험 가입자의 돈을 이용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었다. 삼성도 삼성생명 돈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금산법 제24조 위반으로 드러나 삼성을 제외한 모든 재벌 금융사들이 계열회사 주식을 처분했다. 그런데 삼성만 버텼다. 그리고 그때 금산법 제24조가 일부 불비한 점이 있다는 여론이 있어서 이를 조금 더 세련되게 만들기 위한 개정안이 제출됐다. 삼성은 바로 이때를 기다려 이 법의 부칙에 과거에 있었던 일은 면죄부를 준다고 해 결국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지금까지 지키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이런 쓰라린 경험을 또 다시 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법령과 판례 그리고 유권해석으로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과 다스 차명계좌 의혹을 다스려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최근 슬슬 고개를 들고 있는 금융실명법 보완 입법 가능성을 대단히 경계한다. 그것은 금융실명법이 완전해서가 아니다. 현안이 걸려 있을 때 자칫 법 개정을 논의했다가 부칙 함정에 빠졌던 지난날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금융실명법 개정은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과 다스 차명계좌를 다 처리한 뒤 논의하는 것이 옳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