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혁이 남기고 간 선물들… 늘 빛났던 그를 추억하며

입력 2017-11-08 00:00
지난달 30일 갑작스러운 차량 전복사고로 세상을 떠난 배우 김주혁. 내년 개봉 예정인 ‘흥부’와 ‘독전’이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나무엑터스 제공
대본 리딩 날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있는 ‘독전’ 출연진(위 사진)과 촬영 당시 현장 모니터를 하고 있는 ‘흥부’ 팀. 각 영화사 제공
생전 “장르 변화 주고 싶다”
어느 때보다 연기 열의 불태워

그가 남기고 간 두 편의 미개봉작
‘독전’ 金 출연분 촬영 마친 상태
사극 ‘흥부’는 지난 8월 작업 끝내

출연 약속했던 세 작품은 변경 중


“여러분께 한 말씀 드려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올립니다. 주혁이는 폐 끼치는 걸 정말 싫어하는 배우였습니다. 늘 상대방을 먼저 생각했죠. 이제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주혁이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 짓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저 또한 그러려고 노력할 겁니다. 우리 모두 힘내자고요.”

배우 고(故) 김주혁(45·사진)의 발인 이튿날인 지난 3일, 소속사 나무엑터스의 김종도 대표는 인스타그램에 이 같은 글을 남겼다. 슬픔의 구렁에 빠져 주저앉아 있기보다 다시 일어나 의연하게 살아나가자고. 그것이 저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김주혁 또한 바라는 일일 것이라고.

한동안 ‘올 스톱(All-stop)’됐던 영화계는 서서히 제 궤도를 찾아가고 있다. 앞서 ‘부라더’ ‘침묵’ ‘반드시 잡는다’ ‘내게 남은 사랑을’ ‘미옥’ ‘꾼’ 측이 예정됐던 홍보 행사를 축소·취소했으나 향후 개봉 예정 영화들은 프로모션을 정상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비통한 상황에도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 않나”라고 했다.

김주혁이 남긴 두 편의 미개봉 유작 ‘독전’(감독 이해영) ‘흥부’(감독 조근현)는 내년 관객을 만난다. 각 영화 관계자는 “최대한 완성도 있게 영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고 입을 모았다. ‘독전’은 김주혁 출연분 촬영만 마친 상태이고, ‘흥부’는 지난 8월 크랭크업했다.

‘독전’은 국내 최대 마약조직의 보스 ‘이선생’을 잡기 위해 형사 원호(조진웅)가 이선생 조직의 일원 락(류준열)과 손을 잡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범죄액션물이다. 극 중 김주혁은 중국 마약시장의 거물 하림을 연기했다. 촬영에 앞서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 굉장히 반갑다. 최대한 인물의 정당성을 끌어내어 열정적으로 연기하겠다”고 전했다.

고전 ‘흥부전’을 재해석한 사극 ‘흥부’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권력 다툼 속 피폐해진 백성들이 새로운 세상을 향한 변화를 꿈꾸는 이야기. 김주혁은 백성을 돌보는 지혜로운 양반 조혁 역을 맡았다. 촬영 이후 그는 “전작들과 결이 다른 역할이어서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관객들께 새로운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저 역시 기대가 된다”고 했다.

최근의 김주혁은 그 어느 때보다 연기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지난 4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장르적 변화를 주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예전에는 로맨틱 코미디 위주의 시나리오만 들어와 내 스스로도 지겨웠는데 요즘은 작품의 폭이 확실히 넓어졌다”고 기뻐하기도 했다.

지난 9월 종영한 드라마 ‘아르곤’(tvN)으로 4년 만에 안방극장을 찾은 것 또한 그 일환이었다. 향후 영화 촬영이 줄줄이 예정돼 있었다. ‘공조’(2017)로 인연을 맺은 김성훈 감독의 신작 ‘창궐’에 특별출연하기로 했고, 기획 제작 단계에 있는 ‘열대야’ ‘짝꿍’ 출연도 약속한 상태였다. 이들 세 작품은 불가피하게 계획 변경을 논의 중이다.

최근작뿐 아니라 지난 20년간 김주혁이 선보인 작품들을 이따금 꺼내 보는 건 아마도 그를 추억하는 최고의 방법일 테다. 오지랖 넓지만 누구보다 다정다감한 홍반장, 사랑 앞에 주저하는 소심한 광식이…. 작품 안에서는 언제나 따뜻한 그를 만날 수 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