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 사업장 아이들 이야기
지난달 31일 잠비아 남부 충고 지역의 히마코마 마을에 도착하자 마을 주민 10여명이 몰려 나와 춤을 추며 환영했다.
월드비전 충고 사업장을 방문한 이들은 염종석(64·의정부성실교회) 목사와 정유신 월드비전 경기북부지역 본부장, 박한영 월드비전 간사, 의정부성실교회 성도 3명 등이었다. 충고 사업장은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남서쪽으로 약 230㎞ 떨어진 마을이다.
주민 대부분이 옥수수, 고구마 등을 재배하는데 자연 강수(降水)에 의존하는 농업 형태 특성상 건기가 긴 이 지역에서는 굶주리는 주민이 많다. 보건 시설도 열악하다. 보건인력 1명이 지역주민 평균 1000여명을 보살피고 있으며, 주민 4명 가운데 3명꼴(78%)로 오염된 식수를 마시고 있다. 수인성 질병 감염률이 높은 이유다.
현재 월드비전이 충고 사업장에서 지원하고 있는 아동 수는 4200여명이다. 염 목사가 결연을 서약한 아비걸(6)양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아비걸은 염 목사가 다가가 양팔을 펼치자 큰 웃음을 띠며 안겼다. 아비걸을 꼭 껴안은 염 목사는 “피부와 언어가 달라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다시 실감한다”며 웃었다.
하지만 아비걸의 외할머니 베스카(56)가 말문을 열자 염 목사 일행은 숙연해졌다. 아비걸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한 뒤 아비걸을 놔두고 떠났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종일 다른 마을에서 돈을 버느라 아이를 돌보지 못한다.
베스카는 30여년 전 뱀에 물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 거동이 어려운 상태였다. 베스카는 “아비걸이 내년부터 학교에 가야 하는데 도보로 1시간 넘게 걸린다”며 “아이 혼자 다니기에는 위험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 목사는 준비한 옷을 선물한 뒤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정성껏 기도해줬다. “하나님, 아비걸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자신의 소원대로 훌륭한 선생님이 되게 해 주소서.”
이튿날에도 결연아동과의 만남이 이어졌다. 의정부성실교회 성도의 결연아동인 빅터(6)는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에이즈에 감염된 채 태어났다. 다행히 몇 년 전 할아버지가 빅터를 데리고 월드비전을 찾아 조기에 에이즈를 발견,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고 있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지만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설상가상으로 빅터의 할아버지와 부모 모두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 혼자 빅터를 포함해 손주 6명을 키우고 있다. 뭐 필요한 게 없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그저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바랄 뿐”이라고 소박한 바람을 건넸다. 기도를 마친 염 목사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껴안자 빅터는 수줍은 웃음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아비걸과 빅터 등 현지에서 만난 아이들의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돕기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감사할 줄 알고, 자신이 받은 도움을 갚고자 하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날 오후, 충고 지역 카친두 마을의 한 학교를 찾았다. 깊은 사연을 지닌 학교였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가 6㎞나 떨어져 있다 보니, 주민 수백명이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30㎞ 넘는 거리를 오가며 자재를 옮기고 진흙을 구워가며 세운 학교다.
하지만 건물이 1개뿐이라 교실이 턱없이 부족하다. 짚으로 엮은 지붕도 비가 오면 수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날도 수십명의 2, 3학년 학생들이 큰 나무 아래에서 야외 수업을 받고 있었다. 월드비전은 조만간 이들을 위해 칠판을 제공하는 등 지원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정 본부장은 “월드비전은 단순히 지원만 하지 않고 정부가 학교 시스템 개발과 교사 파견 등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건축 및 교육자재 지원 등을 통해 함께 일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염 목사는 학교 앞에 모인 마을 주민들을 향해 “이렇게 교육을 위해 힘쓰는 여러분을 보니 밝은 미래가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좋은 날에 춤을 추고 싶다”며 마을 주민들을 한 명씩 직접 일으키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모두 염 목사를 따라 일어나 함께 춤을 추면서 현지어로 합창하기 시작했다. 가사는 이런 뜻이었다.
“항상 오늘과 같다면 우리는 너무나 행복하리라.”
월드비전이 여성자립 위해 만든 ‘걸스파워’
어엿하게 가게 주인된 17세 소녀에 ‘뭉클’
월드비전이 잠비아 남부 충고지역에서 진행 중인 사업의 목표는 돕고 있는 마을과 지역의 온전한 자립이다. 월드비전은 목표에 걸맞게 ‘소득증대사업’을 통해 돈이 부족하거나 아이를 가졌다는 등의 이유로 학업을 그만둔 여성의 자립을 돕고 있다. 이들 여성들이 모인 단체 명칭은 ‘걸스파워’(소녀들의 힘)다.
걸스파워는 2016년 월드비전과 잠비아 정부가 손잡고 만들었다. 다양한 이유로 학업을 그만둔 여성을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거나 고정적인 수입원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현재 걸스파워 멤버는 15명이며, 연령대는 17∼26세다. 월드비전과 잠비아 정부는 이들에게 채소 판매나 농사, 목축 등을 통한 활로를 개척해주고, 약정한 금액을 저축하도록 독려한다. 그렇게 모인 돈은 걸스파워 멤버들이 질병이나 각종 경조사가 발생했을 때 요긴하게 쓰인다. 지역사회기금과 걸스파워 멤버를 위한 대출기금으로 나뉘어 활용된다. 일종의 ‘보험금’ 같은 용도다.
대출이자는 월 10%다. 비싸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잠비아 정부 지역발전부서에서 일하는 브레이 말람보씨는 “잠비아 시중은행의 대출이자는 월 40%에 달하고, 여성에게는 잘 빌려주지도 않는다”며 “이렇게 대출을 통해 자립을 돕는 동시에 멤버들에게 위생 개념과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등 꼭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고 밝혔다.
창립 1년 만에 걸스파워는 큰 열매를 하나 맺었다. 지역 내 마을에 작은 식료품 가게를 연 릴리안 모노(17)가 그 주인공이다. 7학년 때 가정환경 문제로 학교를 그만둔 릴리안은 걸스파워에서 10달러를 빌려 이를 밑천삼아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를 위해 필요한 건물은 그의 친지들이 십시일반으로 벽돌을 구워 지어줬다.
릴리안의 하루 매출은 평균 20달러다. 1.5달러면 아프리카 빈민 가정 한 곳이 1주일 동안 옥수수죽을 끓여먹을 수 있는 금액이다. 릴리안은 “저축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는데 걸스파워를 통해 저축을 하게 됐다”며 “월드비전을 연결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충고(잠비아)=글·사진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
[밀알의 기적] 선생님 꿈꾸는 새싹, 척박한 땅에 희망이 자란다
입력 2017-11-08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