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HIV·에이즈 환자 상당수 감염 사실조차 모른다

입력 2017-11-06 18:49 수정 2017-11-06 21:54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 660명이 연락두절 상태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부의 환자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문제지만, 정부의 대처도 미흡하다는 비판이다.

선진국은 국가 에이즈 정책으로 감염 초기 진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유엔의 에이즈특별기구인 유엔에이즈(UNADIS)도 ‘15∼49세 남녀의 최근 1년간 HIV검사·결과 인지율’ 등을 조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검사 자체에 심리적 문턱이 높다. 질병관리본부의 2014년 연구용역 자료에 따르면 HIV·에이즈 감염환자는 현재 보건당국에 신고된 환자보다 두 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자 상당수가 자신의 감염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방지환 서울보라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한국처럼 HIV 의료비 지원이 잘되는 나라에서 에이즈 감염이 늘어나는 것은 자신이 감염됐는지도 모르는 환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보건소는 HIV 감염 의심 환자들을 위해 익명검사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안심하고 찾는 이가 많지 않다. 2015년 보건소 익명검사 비율은 전체 HIV선별검사(42만9795건)의 6.1%에 불과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단 감염사실이 노출되면 경제적 능력 상실, 가족·지인과 관계 단절 등 잃어야 할 게 많아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며 “치료 사각지대 환자군은 결국 추적이 불가능하고, 신규 감염 환자가 늘어나는 원인이 된다”고 진단했다.

현재의 국가 에이즈 예방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진 점도 손봐야 할 부분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에이즈 취약군을 명확히 선정하고 집중적으로 예방정책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라틴계·흑인 등 소수민족과 남성 동성애자, 중국은 정맥용 마약사용자들과 장거리 트럭 운전사를 국가 에이즈 예방사업의 중점 대상으로 설정했다. 미국과 일본은 특히 남성 동성애가 에이즈 확산의 주요 경로라는 사실도 명확히 했다. 타깃을 분명히 하고 에이즈 예방에 나서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명확한 정책 대상 없이 콘돔 사용 등 안전한 성관계를 강조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HIV·에이즈 환자의 90% 이상은 남성인데 전국 보건소에서 선별검사를 받은 73.5%(2015년 기준)는 여성이었다. 최근 부산에서 20대 여성 에이즈 환자가 상습적으로 성매매하다 적발되면서 에이즈 공포가 확산했지만 보건당국은 추적 조사 등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HIV 환자만을 부각하지 말고 전체 성매개 감염병 중 하나로 보는 관점에서 성교육을 실시해 안전한 성관계와 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승희 의원은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꿀 수 있는 정부대책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라며 “에이즈 환자들이 편견을 넘어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력, 예산 등 인프라 역시 부실하다. 엄중식 교수는 “현재 각 보건소에는 담당자 1∼2명이 에이즈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감염병 관리를 하고 있고, 질본도 결핵과 에이즈를 같은 과에 묶고 있다”며 “성매매, 동성애 집단 등 고위험군 집단에 대한 홍보, 교육, 빠른 진단을 위한 투자를 할 여력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글=최예슬 이형민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