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총무비서관 특활비 비리
대통령 연루 여부 등 관심
정 전 비서관 “대통령이 위임”
주장하면서도 “개입 없었다”
‘문고리 3인방’, 朴 前 대통령이
자금 요구·수령 등 개입 시인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사이에 ‘국고’인 특수활동비가 뇌물로 오간 사실이 드러나자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사건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대통령 특활비 12억5000만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특활비를 만진 비리라는 점, 대통령의 연루 여부가 관심인 점 등은 ‘정상문 사건’과 ‘국정원 게이트’의 닮은꼴이다.
근원적인 차이도 있다. 지난번 사건이 애초 청와대에 책정된 특활비를 두고 벌어진 횡령이었다면, 이번에는 다른 국가기관의 특활비를 청와대가 먼저 요구하고 나선 뇌물이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총무비서관이 직접 관리하면서 알아서 쓰고, 내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별도로 연락을 하겠다”고 특활비 관련 권한을 위임했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발의 후 “퇴임하면 농촌으로 가서 환경 보존운동을 하면서 함께 살자”고 제의해서 경호원 등 100여명의 명절 비용·휴가비·경조사비 등이 걱정돼 별도의 돈을 마련했다는 게 당시 정 전 비서관의 주장이었다.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위임’을 주장하면서도 대통령의 ‘개입’은 없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특활비 비축은 대통령의 위임 취지에 반하는 것” “국정운영비를 보관시킨 사정을 노 전 대통령은 모른다”고 한 것이다. 정당한 위임이라는 그의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지시에 “퇴임 후 사용하기 위해 별도로 보관하라”는 내용까지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별도 보관’ 지시가 있었다 해도 예산을 불법 집행하라는 위법적 지시에 해당한다는 판단이었다.
반면 ‘문고리 3인방’은 정 전 비서관과 달리 대통령이 자금 요구와 수령에 깊이 개입했음을 시사했다.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수석은 지난해 9월 국정원에 상납을 요구하며 “대통령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대통령은 이때 마련된 2억원을 관저에서 직접 전달받았다.
이 돈이 박 전 대통령의 정당한 국정운영비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법조계에 크다. 정 전 비서관 사건 당시 확립된 판례는 “업무상 정당하게 집행될 때까지는 국고로서의 성격이 소멸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언론의 국정농단 의혹 제기가 거세지던 무렵 국정원에 “돈을 그만 보내라”고 한 것은 자금의 위법성을 방증한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이 불법적 영득의사가 없었음을 방증하기 위해 용처 자료를 마련해 뒀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대통령의 비공식적 자금이 관행임을 내세우는 변론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특활비가 반납되지 않고 비축된 사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하며, 죄책을 면해주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당시 재판부는 “범행이 적발되지 않은 사람도 처벌받지 않고 있으니 나도 처벌하지 말아 달라는 주장”이라며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특활비 전용 닮은 듯 다른 ‘정상문 사건’-‘국정원 게이트’
입력 2017-11-07 05:00